드라마 사의 찬미, 그리움의 여행
그런 세상이 있었다. 자아와 꿈같은 건 통용되지 않는 시대, 먹고 사는 것 말고는 안중에도 없었던 세상 말이다. 사람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마음 같은 건 구겨지고 닳아져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마음이란 게 존재하려나? 벌벌 떨고 방치된 마음이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뜨려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우리는 둔탁하고 어두운 시간을 오랫동안 걸어왔다. 1921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한편으로는 강력한 가부장제가 굳건하게 자리했다. 우리는 강대국의 밥이었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가정 공동체를 위해 인생의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했다. 자아 같은 거 그딴 게 다 뭐라고. 이런 세상과 반대로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드라마 <사의 찬미>(2018,SBS), 우진(이종석 분)과 심덕(신혜선 분)이다.
사라진 나라,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기억하리
1921년 동경, 조선인 유학생들이 모여 ‘신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순회공연을 계획한 이들은 사람들에게 조선어로 조선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보여주려 한다. 공연의 총 책임을 맡은 우진은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어 보탤 만큼 공연 제작에 열정을 다한다. 우진의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하는 감정은 바로 ‘그리움’이다.(앞서 김민정 평론가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2020,작가), <사의찬미> ‘왜 당신은 이토록 아름다운가’에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꿈’이 된다. 사랑을 그리워하고 희망을 그리워하고, ‘그리움의 시대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사의 찬미>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그 ‘상실의 감각’일지 모른다. 비루한 삶이 고결한 예술로 승화하는 그 찰나의 순간”으로 말하며 <사의 찬미>의 키워드를 ‘그리움’으로 분석하였다.)
잃어버린 나라,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 그만의 방식으로 조선을 지키고 어머니를 애도한다. 왜 일본어로 된 책을 조선말로 읽느냐는 심덕의 질문에 그는 “내가 조선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라고 답한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3번이나 바뀐 그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머니의 기일이 있는 때면 만사 일을 제쳐놓고 두문불출한다. “희미한 기억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진에게 그리움은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키워드다. 잊지 않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그리움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리워한다고 한들 이미 사라지고 죽은 것이 돌아올 수는 없다. 관비로 겨우 유학을 와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맏이 심덕은 이런 그리움의 무능함을 단 번에 지적한다. 그는 잃어버린 조국엔 큰 관심 없다, ‘나라가 이 모양이니 나라도 잘 살아야지, 괜히 신극 같은 거 하다가 잘못돼서 소프라노 못되면 당신이 내 인생을 책임질 것이냐’고 당돌하게 우진에게 따진다. 성악가를 꿈꾸는 심덕에게 우진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을 가장 크게 여겨왔던 심덕이 생각했을 때 이미 빼앗긴 나라에 우리말로 하는 공연은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었다. 심덕은 그저 자신의 노래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진에게 알려주고 싶어 신극 공연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 사건은 심덕의 인생을 뒤흔든다. 걷잡을 수 없는 우진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다. 힘없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그리움은 강력하게 심덕의 심장에 새겨진다. 신극 공연을 준비하며 그는 우연히 우진의 글을 본다.
‘갈수록 갈수록 고치지 못할 상처에 눈물이 나오는구려. 견디다 못해 울어 보오만 이건 또 왜 이리 속속
까지 불덩이 든 것처럼 뜨겁습니까. 내가 만일 어린애였다면 가슴이 아파서 운다고 어머니가 의사를
부를 테지만 내가 만일 어린애라면 속 탄다고 어머니가 냉수라도 갖다 줄 테지만 내가 만일 어린애였더라면
병들었다고 하룻밤만 자면 그만이었겠지만 어린애가 아닌 나이기 때문에 이 상처는 점점 깊어집니다그려
아 내가 어린애였더라면’
우진의 글은 어린아이처럼 울어보지 못하고 상처를 견뎌야 하는 아픔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심덕이 우진에게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심덕 자신이 감내하고 감추어야 했던 상처의 이야기를 우진의 순수함과 깨끗함이 아름답게 그것들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내어 말한다는 게 수치스러웠던 당대에 우진의 글은 그것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밝힌다. 또한 상처를 말하는 우진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인이 위압적으로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는 상황 속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조선말로 ‘나의 본국은 조선이다’라고 정체성을 밝혔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조선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조선의 얼이 살아있다는 걸 신극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우진과의 만남은 심덕을 그리움의 세상으로 초대한다. 또한 우진 역시 심덕을 통해 버리려고 하였던 글을 쓰는 꿈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우진과 심덕의 인생은 바람 잘날 없다. 우진은 목포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자제다. 집안에땅이 워낙 많아 우진은 이를 관리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훈련받았다. 그의 인생은 정해져 있었고 아버님이 정해준 짝과 일찌감치 혼인하였다. 일본인들 앞에서는 당당하였던 우진은 아버지 앞에서는 순한 양,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말끔한 모던걸처럼 보이는 심덕은 가난한초가집에서 겨우 먹고 산다. 심덕이 벌어오는 돈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다. 부모님은 대놓고 혼담이 들어온 부잣집 자제와 결혼을 해 가족을 살려달라고 한다. 심덕의 두 동생들도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고 이들의 유학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심덕은 동경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급사보다 못한 급여를 받는 형편이었다. 일본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후원자까지 생겼지만, 추문에 휩싸여 모든 공연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는다. 우진과 심덕이 살아가는 세상에 사랑은 아무런 힘이 없다. 오히려 살아야 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쓸데없는 놀음에 불과하다. 특히 유부남인 우진과 심덕의 사랑은 이루어져야 할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깟 글 좀 안 쓰면 어떻나 집에 돈이 저렇게 많은데, 불륜이 뭐 대단하다고 그냥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게 더 건전하고 좋은 것 아닌가. 이러한 합리적인 결정에 대하여 그리움은 계속하여 따라온다. 두 사람이 5년 동안 이별하며 깨달은 것은 단 한 번도 서로를 잊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심덕은 우진의 글을, 우진은 심덕의 아름다움 속 깊은 고독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제도와 관습을 넘어서 존재를 이해하고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한다. 숨 쉴 수 없는 세상에 유일한 버팀목이 바로 사랑임을 두 사람은 알게 된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에서 말하듯 생은 결국 설움 밖에 남는 것이 없다. 심덕은 조선 총독부의 촉탁가수가 되지 않으면 가족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돼버린다. 우진 역시 아버지가 우진의 가출로 곡기를 끊은 상황이고, 더 이상 심덕과 함께하기 어려워졌다. 이들은 그저 사랑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글을 쓰며 살고 싶은 청춘이다. 얼굴도 모르는 부인과 어린 나이에 혼인을 하고,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면 가족이 죽임을 당하는 독한 시대는 잔인하게 두 사람의 순수를 베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철없는 사랑 놀음 , 때 묻지 않았기에 지켜낸 영혼
누군가는 비난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 운동을 한 이들도 있던 이 시대에 이들의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자기들 행복하자고 바다 위에서 동반 자살을 한 이들의 이야기가 굳이 회자될 필요성이 있을까? 맞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희생하였고, 그들의 공로 덕분에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죽음’만이 유일한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지키고 싶어서 선택한 죽음에 대하여 말이다. ‘이기적인 죽음’이라 이야기될 수 있는 그것에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했던 것들이 이해받지 못했던 울분이 들어가 있다. 그 울분의 목소리가 <사의 찬미>로 노래되며 삶의 쓸쓸함과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철이 없는 사랑 놀음이라 비난 받을지언정, 우진과 심덕은 그들의 영혼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다시는 세상이 사람을 벼랑으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러한 일들이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여, 너무나 분통하고 억울하여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바깥으로 스스로 사라지는 일들이 여전히 일어난다. 우진과 심덕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그러했다면, 오늘날의 일들은 그 반대의 이유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세상과 사람을 환멸하고 시궁창 같고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기억으로만 얼룩덜룩한 삶을 살아가다가 무언가의 노예로 삶을 마친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우리의 시대가 그때보다 더 어두운 것은 아닌지, 우리가 불러야 할 가슴의 노래는 무엇인지 문득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