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직한 사람들>, 아름다운 셀프저격
한결같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한결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같다."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위나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가차없이 자신의 신념, 태도, 입장을 쉽사리 바꾸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한 베드로의 고백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흩어져버리기도 했다.
인간의 고백이란 본디 증명되지 않은 것. 연약한 인간에게 한결같음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주상숙(라미란 분)이 거짓말을 못하게 되며, 돈과 명예에 눈이 멀었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상숙이 회개를 하고 돌이킬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그건 날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 옥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주상숙을 몰아세우고 비판하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주상숙은 어떻게 되었을까? 주상숙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진짜 깨닫는 순간 너무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제대로 삶을 살아갈 수 없었을거다.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에서 그치고 마는 자의 최후는 가룟유다와 같다. 그게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절대 알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았을거다. 그래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정신승리하면서 말이다.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동시에 인정하게 하고 돌이키게 한다.
또한 고백이다. 앞서 고백이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거라고 말했다. 그렇다. 고백은 어리석고 미약한 이가 굳이 내뱉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이 언제 변할까 두려워 고백을 포기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백을 지키고 싶은 열망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한결같을 순 없지만 한결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우산처럼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산을 쓴다고 젖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흠뻑 젖지는 않게 하니 말이다.
주상숙이 처음에 정치에 입문했을 때 가졌던 순수,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고 싶었던 마음, 당시에 그것을 고백했던 순간이 주상숙이 가장 지키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었을 거다.
글을 쓰는 동안 그동안 스스로 선택한 비겁함들이 생각났다.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이 왕따시키는 아이를 같이 못되게 대하고, 사랑받고 싶어서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고, 견뎌보지 않고 나온 직장 등등 말이다.
주상숙이 자신이 나쁜 짓을 하는 몰래카메라가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못됐던 내 모습이 가려졌던 순간들이 있다.
결국 이런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감사하다. 정직한 후보가 정직하지 않은 자신을 드러냈을 때 가장 멋있었던 것처럼, 날마다 인정하고
그럼에도 좋은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언젠가는 위선이나 위악이 아니라 내모습 이대로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