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나를 인정하고, 넘어서는 시간
운동에 문외한인 나는 같은 유니폼, 비슷한 빠르기로 달리는 듯한 사람들이 나오는 운동경기를 뭐가 재밌어서 보는지 잘 모르겠다. 유일하게 챙겨본 건 대학교 때 두산베어스 야구, 그리고 2002 월드컵이 전부다.
하지만 슬램덩크는 재밌다. 캐릭터가 뚜렷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연합해 경기를 운영해나가는 걸 확실하게 볼 수 있어서다. 특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 서사가 전국대회 경기 장면과 오버랩되는 방식으로 담는다. 이는 선수의 한 땀 한 땀, 슛 하나하나에 한 사람의 삶과 상처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담아 있음을, 인물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보는 힘을 높인다.
뜨거운 코트를 달리는 북산고 농구부 주전 5명
이들을 보며 15 ~ 16년전 징그럽게 오르지 않던
성적표와 싸웠던 수험생시절이 생각났다. 아무리 공부해도 제자리 걸음이었던 모의고사 등급, 그마저도 수능날 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던, 내가 바보란 걸 바득바득 증명했던 시간이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북산고 다섯 명은 영화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무언가를 깨닫는 것도, 위기를 맞아 절규하는 것도 없다. 상대편 산왕공고가 20점이 넘는 점수 격차로 이기고 있고, 이들이 한골도 못넣는 상황은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그동안 살아온 과거로 향한다는 게 독특하다 생각했다.
송태섭은 '가드' 포지션으로 공이 자신의 팀에게 잘 연결되게 해야 한다. 송태섭이 무너지니 북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송태섭의 패스는 연달아 실패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약점인 장거리 슈팅까지 부각되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송태섭은 주장 채치수까지 상대의 공격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며, 그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린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죽은 형 준섭만큼 농구를 잘하지 못했던 태섭, 어머니는 그가 형의 그림자 안에만 있다 그의 인생을 살지 못한 것을 염려한다. 집안에 형의 흔적들을 모두 없애려하지만 태섭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형만큼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이 임하는 경기에서만큼은 공을 지키고, 꾸준히 아득바득 해나갈 수만 있다면. 작은 키와 장거리슈팅의 약점은 재빠른 돌파력과 누군가를 활용해야 할지 알아채고 번뜩이는 영민함으로 팀을 빛나게 한다.
강백호의 리바운드로 팀의 기세가 북산에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4명은 송태섭과 비교했을 때 피지컬도 우수하고, 멋진 슛도 많이 쏘아올린다.
반전의 강백호, 놀라운 각도로 3점슛을 쏘아올리는
정대만, 함부로 골을 넣을 수 없게 하는 기존쎄 채치수, 조용하지만 이 모든 게 가능한 서태웅
그러나 이들의 능력은 송태섭과 아울러졌을 때 발휘할 수 있다. 슛을 아무리 잘해도 패스를 받지 못하면 소용없다.
어머니, 어머니
송태섭의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어려운 시간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원망하지 않았고 편협하지 않았다. 그는 평온하고 공평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주었다.
산왕과의 경기를 마치고 온 아들 태섭에게 "경기 잘했어?" "힘들지 않았니?"라고 묻지 않고 "산왕은 어땠니?"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어머니에게는 중요했다.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 만났던 그가 나에게 어떤 감동과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는지, 만남 자체가 이미 수확이다.
현실적으로 운동, 공부를 하는 이에게 높은 순위는 중요하다. 허나 숫자에 집중할수록 부각되는 건 약점이다.
더 퍼스트 클래스는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뜨거운 코트를 가르고 있는지, 함께 숨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인생은 결국 나의 고유함을 채워나가게 하리라는 걸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섬세한 그림 한 장면 매우 성실하게 잘 만든 작품이었다. 뻔했지만, 그 안의 깊이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