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 팔구일 Apr 24. 2023

괴물도 사랑하고 싶다면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발타자르 토마스, 이지영 옮김, 2018


사랑이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어보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나처럼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 과거의 상처에만 집중해 앞을 보지 못하는 헐벗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시선이 갔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이 마음이 100% 상대방을 향한 거라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사랑은 끝내 확실히 이기적인 것(《비참한날엔 스피노자》,발타자르 토마스, 이지영 옮김, 2018,  32쪽)이라 밝힌다.


내가 가진 기억이 그 사람을 향해 가는 거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내게 익숙하고 포근한 기억과 연관된 상대를 발견했을 때, 사랑의 안테나가 발동한다.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사랑하는 게 아닌, 그를 볼 때 뛰는 심장소리, 나의 생명력에 반하는 게 사랑이다. 상대에 열렬히 환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인간은 이토록 자기 위주의 나르시스트다.


사랑은 흔들리는 정서를 안정되게 잡아주는 닻이며

감정의 정글에서 우리가 기준을 삼는 나침반이다.

다만 그런 감정이 바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닻일 수도 있고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나침반일수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정서의 대상 대신에 올바른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위의 책, 27쪽)


내가 안정되고 싶어서 누군가를 열망하는 거라 생각하는 마음이 가증스럽다.


그러나 사랑은 내 삶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대상만이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사라진다 해도 슬픔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다른 이의 수중에 떨어졌다고 해도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고통, 미움, 혼란도 생기지 않는다.

(위의 책, 29쪽)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최대한 좋은 사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녀간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주변을 살펴야 한다.

욕망에서 멈추는 '사랑'은 내 옆에 사람이 굶주려가고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상대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곳간을 짓는데 열중하고야 만다.

어제 조슈아 지프 교수님께서 저녁예배 설교 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나는 서른다섯 해를 살아도 좋은 사랑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제는 저녁 예배가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빨리 집에 와서 어제 선물 받은 족발을 같이 먹자는 전화를 한 거였는데, 나는 먹고 싶으면 엄마 먼저 드실 일이지 이미 밖에 나와 있고 식사시간도 지났는데

전화를 한 거 자체가 짜증나서 예배당이 울릴 정도로 짜증나게 하지 말고 전화 끊으라고 말했다. 이런 내가 싫었던 이유는 이 잘못을 깨달은 게 주변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였다.


바다야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 설렁탕 돼지국밥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저런 사람일 때 자조적으로 생각나는 읊조림


이보다 더 나쁜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랑의 파이가 따뜻하고 든든할만큼 역량을 높여야만 한다. (이미 썩고 차가운 파이라면 갖다 버리고 새로 만들고)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역량이다. 욕망은 우리가 실존 안에서 지속 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지는 힘, 즉 우리 역량을 말한다. 반대로 결핍은 이런 역량의 감소를 의미한다. 결핍은 우리 힘을 떨어뜨리고 욕망 또한 감소시킨다. 우리 욕망을 고조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결핍이다. 결핍이 욕망을 약화시키고 빈약하게 만든다면 이와 반대로 우리가 우리 역량을 증대시키는 욕망을 현실화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것은 기쁨의 정서다.

(위의 책43쪽)


작가의 이전글 더 퍼스트 슬램덩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