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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May 15. 2024

바라보면 슬퍼지는 것들

바라보면 슬퍼지는 것들이 있다.

예전에 자주갔던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때 아주머니는 나를 보시며 따님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마주친 아주머니 얼굴을 모른 척했다. 자기 딸과 또래로 보이는 것만으로 내쪽을 빤히 보는 모습이 슬퍼보일 것 같아서였다. 아주머니를 나의 편견과 같잖은 착한 척으로 슬퍼보이는 사람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존재만으로 짠함이 올라오게 하는 것들. 동정으로 대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는 것들.


어린 시절 가족과 산에 간적이 있었다. 산밑에 식당이 꽤 많았는데 저녁시간이었는데도 모든 식당에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무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던 가게 사람들의 모습,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저 식당 하나하나 다 들어가서 밥 사먹을거라고 오빠가 그랬었나.


돈 만원이 없어 동생과 차를 마시러 가지 못했던 마흔 살 언니의 사연같은 게 내 주변에 꽤나 많다.

시대가 발전해 굶어죽는 사람이 없지 않냐며 지금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어딨냐고, 빈부격차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고시원 화장실이 막혀 두달이 넘는 기간,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했던 삶의 기본적인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아등바등 살아내냐 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이야기는 성가신 이야기며 당사자의 문제지 타인이 해결해줄 수는 없다. 구질구질한 얘기는 한 번은 들어줄 수 있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더 만나고 싶지 않다.


슬퍼지려 하는 순간은 외면이 일어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사연을 말할 곳 없는 사람들의 젖은 날개는 굽은 등을 더 딱딱하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눈물이

이땅의 온도를 차갑게 한다. 바라보면 슬퍼지는 것들을 향해 편견일지도 모를 눈물이 어쩌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시선이 슬픔을 향해 나아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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