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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May 15. 2024

[단편] 미안한 마음 (1)

타그닥타그닥, 빗소리는 멈추지 않는 타자기소리처럼 들린다. 빗방울은 끊이지 않을 기세로 퍼부으며 새벽녘 겨우 잠든 장초하를 깨웠다. 비 오는 아침은 반갑지 않다. 잿빛 날씨는 대출 미납 고객의 원망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딴 전화나 돌리는 일이나 하고 있지? 이자를 받아서 어디다가 쓰는 건데? 너 같은 애들 월급 주라고 내 피 같은 돈을 빼먹는 거잖아 이 버러지 같은 것들아!’


콜센터 상담사 4년차. 연차가 쌓이면 능력도 높아진다지만 이 일은 능력과는 별개의 일이다. 

시한폭탄 같은 전화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커질 뿐이다, 얼마나 시답잖은 논리로 고객을 기만하는가, 상담사란 직업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가 자각하는 깊이가 커지는 것 말고는 성장과는 크게 관계없다. 은행은 대출 고객들에게 변동금리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았고, 파생상품의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 

장초하가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는 4년 동안 응대 매뉴얼은 변하지 않았다. 미약한 매뉴얼로 논리로 무장하고 독기가 가득한 고객들을 응대한다는 건 맨몸으로 헤비급 권투 선수들에게 쳐 맞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매뉴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알아가는 건 매뉴얼의 허점뿐이었다. 어떻게든 고객의 분노를 틀어막아 모멸감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만이 윗선으로 불만을 전달하지 않는 최선의 수비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렇게 빌빌거리면서 사는 거 너네 부모님은 아시니? 너 낳을 때 낳은 미역국 존나게 아깝다”


아침 8시 지하철 3호선은 동물원의 우리같다. 

겨우 몸을 쑤셔 옆사람의 어깨에 의지해 균형을 잡는다. 중간 중간 “아씨”를 내뱉으며 ‘발’을 묵음으로 겨우 처리하려는 사람들의 감탄사가 연달아 들려온다. 한 할아버지가 내리며 문 쪽에 서 있는 장초하의 어깨를 3번이나 연달아 치고 내린다. 

장초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갤럭시 버즈의 음량을 최대치로 키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CCM은 장초하를 빛이라 은유하고, 세상은 너 같은 건 걸리적거리니 저리로 짜져있어라고 힘주어 때린다.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하지 않다. 장초하는 출근전투력을 상승하는 음악을 성공적으로 선택했을 따름이다. 

회사 1층 편의점에 들러 2+1 하리보 젤리와 아이스컵과 아메리카노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오늘의 약값을 지불한다.


회사 한 구석에 펼쳐진 우산 몇 개가 보인다. 

두어 개의 우산 정도만 필 수 있는 자리가 남아있다. 장초하는 잽싸게 우산을 펼친다. 

일을 할수록 자존감도 이처럼 활짝 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란색 우산을 쳐다보며 장초하는 괜히 씁쓸해진다. 오늘 5명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5명은 하루 할당 진상 고객의 숫자다. 운이 나쁘면 걸리는 족족 진상 전화만 받아내야 하는 날도 있다. 상담 능력보다 중요한 건 진상을 피하는 신의 은총이다. CCM을 컬러링으로 설정한 진상고객을 만나는 날은 답도 없지만.


화면에 고객 정보가 뜨면 대출 내역과 이전 상담사 통화 내용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이전에 비슷한 내용으로 당일 상담이 이뤄질 확률이 거의 대부분이다. 장초하가 이전 상담사 하주리를 보고 멈칫한다. 신용대출 돌대가리 상담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해 똑같은 말 계속 한다. 이율이 왜 이렇게 올랐는지 물어보는 질문엔 변동이율 때문이라 짧게 설명하고 고객 분노가 일어나는지 여부는 우선 고객의 반응을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예민한 마음을 기다려주며 통화해야 하는 게 관건이다. 하주리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고객의 반응 따윈 안중에도 없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할 말만 이어나간다. “약관에 나왔다고요. 약관 확인 안하신 고객님의 부주의를 왜 상담사인 저한테 따지시는 겁니까?”


하주리의 이러한 응대로 금감원에 올라간 콜수는 그의 입사 한 달 동안 다섯 차례나 됐다.

“약관?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대출받으라고 바쁜 사람 늘어지게 붙잡으며 감언이선 퍼 부으던 것들이 누군데. 30분 넘게 통화하면서 이율이 변동이란 말은 어쩜 그리 쏙 빼놓고, 이제 와서 내탓이라고? 내가 대출 받고 싶어서 받았어? 니들이 전화해서 대출받으라며!”


이런 민원 고객이 늘어난다는 건 다른 상담사들에게도 영향이 갔다. 이자미납고객은 매달 필수적으로 안내가 나가야 한다. 하주리의 통화로 틀어진 고객들이 다음 상담사들에게 좋은 말이 나갈리 없다. 하필 장초하는 진상고객보다 무서운 이전상담사 하주리 고객의 전화가 연달아 밀려오는 늪에 빠지고야 말았다.


욕을 참고 한숨을 내뱉는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인데 사무실 공기가 무거워진다. 장초하와 같은 사무실에 있는 상담사들은 고작 한숨 5초만으로 그가 어떤 지난한 통화를 겪었는가를 알아차린다. 어차피 곧 자신들에게도 찾아올 재앙 같은 전화이니 상담사들은 장초하가 어떤 통화를 했는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겨우 오후 업무까지 마무리했을 때 퇴근 5분전, 콜백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콜백이란 고객의 요청으로 상담사가 전화를 다시 거는 거다.


“장초하 상담사님이 제일 친절하고 알기 쉽게 천천히 말해줘서 이름도 외웠어요. 다른 상담사들은 너무 빨리 말해서 자기네 이름도 똑바로 안들리잖아요.”


“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무슨 일 때문에 전화주셨을까요?”


“제 미납금이 얼마죠”


“주민번호 앞 6자리 확인 후에 도와드리겠습니다.”


“890525”


“네 고객님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납금액은 오늘 기준으로 1억 5천 이백 오십이만천 이백이십이원입니다.”


“평생 갚을 수 없는 돈이에요. 이자만 갚으면서 살다가 저 결국 죽겠죠?”


고객은 이 말을 마치고, 한숨만 깊이 들이마신다. 

고객의 한숨을 듣자 장초하는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고객이 자신에게 욕할까봐서가 아니었다. “평생 콜센터에서 쳐박혀 살다가 저 결국 죽겠죠?”라는 물음이 장초하에게서 울려왔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시뻘개진다. 

스타벅스 텀블러에 담아놓은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소리가 고객으로 들리지 않게 MUTE 처리는 잊지 않는다. 텀블러에 새겨진 초록빛깔 바탕의 인어의 표정은 알 수 없다. 은자 언니가 준 텀블러는 4년동안 이토록 튼튼하게 장초하의 곁을 지켰는데, 언니는 암에 걸려 죽었다. 암에 걸린 이유는 지독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뿜어댔던 담배 때문이었다. 옥상 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던 은자를 향해 왜 한 번도 그만 피우란 말을 못했을까. 담배마저 없으면 은자언니가 콜센터를 그만둘까봐. 언니가 콜센터를 그만두면 진상고객 할당량이 더 많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봐, 언니가 막아주는 방패 덕분에, 진상고객에게 걸려들 때마다 도움을 요청해도 유일하게 자신의 자리로 달려와 주던 사람이 사라질까봐 무서워서 그런 거였을 거다. 

결국 은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 중 하나는 장초하이기도 하다. 언니는 진상고객과 통화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2년도 못돼 세상을 떠났다. 

언니 나이 마흔일곱 이었다. 콜백 통화를 마친 장초하는 뒤늦은 퇴근길에 나선다. 엘리베이터 앞에 하주리를 보자 마주치고 싶지 않아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전화로 줄어든 수명은 계단을 걸으면 늘어날 수 있을까?


장초하는 출근은 지하철, 퇴근은 버스로 한다. 건물을 나오고 나자마자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한다. 저녁에는 지상의 공기가 절실했다. 다음 버스는 15분 뒤에 도착예정이다. 시간도 있는데다 바로 뒤 편의점이 보이다. 이런 날은 로또였다. ‘로또 판매’라는 글자가 크게 붙여진 편의점으로 뛰어가는 동안 바람이 불어왔다.


오전에 비가 온 덕분에 저녁의 공기는 시원했다. 장초하는 자신이 아주 오랜만에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쉬고 있음을 인지했다. 바람과 공기가 그의 작은 숨에 콧노래를 불어주었다. 자장가였다.


“제가 로또를 처음 해봐서 그러는데, 숫자 여섯 개를 가로에 하나씩 찍는 거예요?”

“여기 한 줄에 숫자 46개중에 6개를 하면 돼요. 이 한 줄이 천원이에요.”


1,5,25,21,22,3

마지막 통화 고객의 오늘 기준 이자 금액이다. 

원단위까지 떨어지는 금액을 기억하는 자신이 섬뜩하다. 아니 애틋하다. 전화 없이도 돈을 벌고 먹고 살 수 있을까? 모욕을 견디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자신에게도 있을까 장초하는 생각해본다. 만약 그런 세상에서 맛보는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일까? 단 걸 먹으며 모욕을 잊으려 애쓰는 삶이 소거되는 게 어떤 건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밤이다. 주머니에 남은 하리보를 꺼내 입안으로 넣는다. 눅눅하지 않아서 좋다.


회사 건물 앞, 이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간다면 답답함을 참을 수 없을 거였다. 

사무실은 창문도 막혀있고, 상담원들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뒤엉켜 섞인다. 진상과 대화하다 알 수 없는 탄식 같은 한숨소리까지 더해지면 썩은 생선 100마리의 비린내를 맡는 것만큼 역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는 것 말고는 옆 사람을 바라볼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책상 위 텀블러는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제빙기로 향하여 얼음을 잔뜩 담는다. 회사에 몇 안되는 복지다. 

전생에 얼음을 못 먹어 한이 서릴 만큼 매일 하루 두번씩 텀블러에 얼음을 꾹꾹 채운다. 시원하고 날카로운 얼음 소리가 사무실까지 공명을 울릴 것이다. 얼음이 대신 마음의 소리를 전하는 것 같아 때로 고작 이런 행동 하나에 신명이 느껴지기도 한다. 옆의 하주리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타먹으러 왔다. 한 번씩 흘끔흘끔 장초하를 보더니 지나간다. 

같은 업무를 하는 상담사라 해도 인사를 하고 지낼 필요는 없다. 장초하가 입사 4년 동안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하주리다. 하주리가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때 동석 콜을 했을 때 일이다. 동석 콜은 신입 상담사가 업무를 배울 수 있게 기존 상담사들 옆자리에 앉아 전화응대를 어떻게 하는 건지 듣는 거다. 그리고 신입 상담사가 응대하는 걸 기존 상담사가 옆에서 듣고 전화응대 팁을 알려준다. 장초하가 전화 응대를 할 때 옆에서 하주리가 듣고 있던 때였다. 고객이 우편으로 내용증명을 받고 싶단 요청사항이었다.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내용증명은 전화상으로 처리할 수 없고 고객이 직접 은행에 방문하거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안 된다는 걸 여러 차례 설명했으나 고객은 무조건 보내달라고만 요구하고 있었다. 그때 헤드셋으로 함께 전화를 듣던 하주리는 일단 팀장한테 예외적으로 요청하면 안 되냐고 장초하에게 끈질기게 말했다. 할머니 고객이 혼자서 은행 방문하기도 어렵고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건 더 힘들 테니 전화상으로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며 말이다. 한 번이 아니라 어려 번 똑 같은 소리를 하는 하주리가 짜증났던 장초하는 그런 매뉴얼은 여기 없다고 겨우 말했다.


“일단 한 번 팀장님한테 물어보면 안돼요?”


“이런 거 일일이 말할 시간 없어요. 팀장님이 처리해야 하는 악성민원도 많고 이정도는 상담사 선에서 처리하는 게 좋아요. 특히 이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개인정보 보호가 문제가 되면 애초에 고객한테 전화해서 대출받으라는 아웃바운드콜을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그렇게 정한 게 아닌데요. 저는 힘없는 상담사인데요.”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괜찮은 게 참 편한 일이긴 하겠어요.”


“뭐라구요?”


하주리는 바로 팀장에게 향했고, 집요하게 따졌다. 

결국 하주리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을 윗선에 말할 수 있는 소통창을 만들었다. 초반에 이런 걸 굳이 만들어서 왜 일을 키우냐는 반대도 많았지만,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특이건들도 다른 상담사들과 공유하고, 어떻게 처리됐는지 까지 볼 수 있어 기존 상담사들의 업무 부담도 줄었다. 하지만 장초하는 한 번도 소통창을 이용하지 않았다. 최대한 자기 선에서 끝내려고 했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콜을 나누어서 하는 업무강도가 높았고, 인입되는 전화량을 최대한 많이 당겨받기 위해선 소통창에 입력하는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초하가 봤을 때 소통창으로 실제적으로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가 되는 건 없었다. 다시 전화하는 콜백만 늘어나는 번거로움만 높아질 뿐이었다. 하주리랑 눈까지 마주치니 기분이 가라앉은 장초하는 얼음을 더 꾹꾹 눌러담는다. 얼음이 텀블러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꽤나 신명난다.


그때 밖으로 나갔던 하주리가 다시 탕비실 안으로 들어오며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장초하와 충돌했다. 

부딫치며 장초하의 텀블러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우당탕탕 소리는 어째 오늘 전화가 쉽지 않을거라는 징조 같아 불안하다. 하주리는 미안하단 말을 건네는 대신 장초하의 텀블러를 주워준다.

장초하의 옷은 물이 꽤 많이 튀겼다. 9시 10분부터 전화를 해야 하는데, 벌써 9시 7분이다. 자리로 향해야 한다. 거지같은 전산시스템은 10분마다 사이트 로그인을 다시 해야 한다. 그놈의 개인정보 유출을 엄한 상담사에게 찾으려는 이상한 엄격함이 업무를 더 조이게 만든다. 장초하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하주리로부터 텀블러를 뺏는다. 아차, 그뒤 얼음을 밟아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뇌진탕이다. 엠블란스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장초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1,5,25,21,22,3


그날 일반 병실 6인실에 켜둔 텔레비전에선 로또방송이 흘러나왔다. 장초하 눈이 번뜩 뜨인 건 로또번호

6자리가 방송되던 때였다. 장초하는 두뺨을 손으로 갈기기 시작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로또 당첨 숫자가 큼지막하게 나온다.


1,5,25,21,22,3


장초하는 이번엔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세게 때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옆에 있던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장초하를 보더니, 간호사를 불렀다.


“환자 분, 정신 드세요? 어디가 불편하시죠?”


무미건조한 간호사의 물음에 장초하는 이곳이 현실인가 싶었다. 이번엔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가위손을 만들더니 자신의 팔목을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환자 분, 왜 그러세요?”


“여기가 꿈 아닌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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