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회사에서 티타임을 하다 보면, 젊은 친구들이 은근슬쩍 묻는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냐고, 돈을 잘 벌려면 뭘 해야 하냐고.
질문은 매번 다른 듯하지만, 끝은 늘 똑같다. ‘돈’
그럴 때면 나는 말을 아낀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를, 덜 무겁게 꺼내려면 조금 돌아 들어가야 하니까. 물론 내가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그래서 종종 만화책 얘길 꺼낸다. 원피스. 루피가 해적왕이 되겠다고 외치던 이야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료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 동료가 없었다면, 해적왕(성공, 목표)이라는 말은 그저 혼잣말로 끝났을 것이다. 그 얘길 꺼내는 이유는, 살아가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그래서 아직 미혼인 친구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구해오면, 나는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좋은 동료를 먼저 찾아.’ 여기서 말하는 동료는 단순히 같이 밥 먹고 웃는 사람만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 함께 오를 사람, 함께 노를 젓고, 때론 바람을 기다려줄 사람. 기쁠 때는 두 배로 나누고, 괴로울 때는 반으로 덜어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배우자라는 단어는 어쩌면 너무 무겁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가장 오래 함께할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한다. 모든 여정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되어주는 사람. 그 존재 하나로 삶의 지도가 달라지는 것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았다.
가족이라는 건, 바다 위에 떠 있는 조용한 배 같다.
어떤 날은 함께 만든 목재 위에서 노를 젓고, 바람이 닿는 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배에 누가 타고 있는가다.
누군가는 조타를 맡고, 별을 읽는다. 누군가는 말없이 흘러넘친 물을 퍼낸다. 침묵이 오히려 믿음이 되고, 작은 웃음 하나가 긴 항해를 지탱해 준다.
함께 간다는 건, 같은 바다 위를 걷는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의 무게를 나누고, 잠시 멈춰 서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내 삶에선 가장 든든한 성공이었다.
빠르게 가는 배보다, 끝까지 함께 가는 배. 목적지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그 배 위에서 함께 나눈 시간들. 그게 다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평온할 수만은 없다. 바다는 멈추지 않고, 태풍도 불어닥치고, 파도는 예고 없이 선체를 때린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잔잔한 하루와 거센 하루가 엇갈려 찾아온다. 그 모든 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번 조용한 바다만을 바랄 수 없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절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평온은 언제나 오래가지 않는다. 마치 평정한 수면 아래 숨어 있던 파도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고 없는 흐름의 충돌이 찾아온다. 우리의 배에도, 주말 사이에 예상치 못한 폭풍이 들이쳤다.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잔물결은 어느새 감정을 뒤흔드는 큰 파도가 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침묵 속을 떠돌았다.
감정의 균열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처음엔 어딘가 낯선 침묵이 흘렀고, 말의 속도가 느려졌다. 서로의 말끝에 작은 가시가 돋고, 눈빛은 어느새 벽을 만든다.
그날 밤, 하늘이 먼저 움직인다. 잔잔하던 구름은 거칠어지고, 바람은 방향을 잃는다. 마치 태풍 전야처럼, 모든 것이 고요하게 긴장된다.
천둥이 멀리서 웅웅 울리고, 번개의 잔광이 하늘을 찢는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쌓여 있던 말들이 터져 나온다. “네가 어쩜 내 마음을 모르니?” “아직도 나를 몰라?” “조금만, 네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그 말들은 감정이 아닌, 파도였다. 선체를 때리는 파도처럼, 가슴을 울리는 울림이었다.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눈빛은 서로를 향해 번개처럼 튀었다.
하지만, 그 배 위에는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다. 가만히 구석에 앉아, 소란스러운 말들이 다가오는 파도처럼 느껴졌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작은 배 안에 습기가 차기 시작하고, 아이의 심장은 더 빠르게 뛴다.
그 누구도 몰랐다. 그 출렁이는 시간 속에서 가장 깊이 젖는 사람이, 말을 하지 않는 가장 작은 배라는 걸.
그 밤, 우리는 서로를 잃을 것처럼 외쳤고, 결국 아무도 이기지 못한 채, 고요한 비명만이 파도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정말로 같은 항해를 하는 게 맞는지 조심스럽게 되짚는다.
이 배는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 서로의 생각에 공백을 주고, 한 줄씩 마음을 정리해 본다.
마치 한참 흘려보낸 편지를 다시 펼쳐 보는 것처럼.
이 감정의 퍼즐은 사실 복잡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조각이 있을 뿐이었다. 한 장 빠진 그 조각.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미 그 조각의 자리를 알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 잃어버린 조각이 항상 있었다는 것처럼 우리의 착각 속에서 있었고, 서로의 마음이라는 조각을 확인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미래인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태풍 속에서도 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빛을 내던 존재.
아무 말 없이도 우리를 밝혀주던— 작지만 분명한 등대
나는 조용히 다가가 묻는다.
“… 내 동료가 되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