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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 디지털 1984

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by 라이언윤

어릴 적엔 세상이 커 보였다.

어디에든 숨을 곳이 있었고,

아무도 나를 모를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길엔 흔적이 남고,

모든 말은 기억되고,

모든 행동엔 로그가 붙는다.


나는 지금도

나를 위해 산다고 믿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작고 평범한 사고였다.

통신사의 유심 하나가 해킹당했고,

누군가의 인생이

고요하게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가

전 국민에게 닥쳤다


지문 인증도,

이중 보안도,

그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은행도,

통신사도,

누구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로그인된 존재였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미래’가 준비되고 있다.


정부는 CBDC,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이야기한다.


현금은 사라지고,

지갑은 필요 없어지고,

은행 없이도 돈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말은 멋있다.

‘효율’, ‘혁신’, ‘편의’.


하지만 그 말들이 모여 만든 세상은,

모든 돈의 흐름이 하나의 중앙에 집중되는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

우리는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1984』는 먼 미래를 상상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미래는 더 이상 멀지 않다.


그 소설에 나오는 ‘생각범죄’는,

우리가 오늘 검색창에 적은 단어가 되고,

잠깐 머문 웹사이트가 되며,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가 된다.


우리는 날마다 증명하고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런 행동을 했다.”


그 증명은 종종,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묻고 싶다.


이런 세상을 우리는 정말 원했을까?

이렇게까지 연결되어야 했을까?

이렇게까지 기록되어야 했을까?


아니면,

그냥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걸까.


기술은 빠르다.

속도는 곧 편리함이 된다.


하지만 그 속도가 우리에게서

조용히 무언가를 지워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내 것인지,

내가 통제하고 있는 건 맞는지.


그리고 언젠가,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를.


『1984』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다가오는 생각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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