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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 : 담배와 골프 사이

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by 라이언윤

가까이 갈수록 멀어진다.

내 골프 스코어 얘기다.

매번 ‘이번엔 좀 괜찮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나가지만

결과는 늘 그 반대다.


잘하고 싶지는 않다.

진심이다.


하지만 너무 못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

맞다. 사실, 쥐구멍이 있다면 예약제라도 쓰고 싶다.


나는 그냥,

딱 중간은 가고 싶은 사람이다.

눈에 띄지도, 짐도 되지 않게.

민폐도 아니고, 에이스도 아닌

무난한 동반자.


———


근데 현실은,

전력질주를 해도

그 중간이라는 자리에 닿을까 말 까다.


티박스에 설 때마다

나도 멋진 티샷을 상상한다.

스윙은 유려하고,

공은 소리도 없이 떠오르고,

동반자들은 가만히 숨을 멈추는 그런 순간.


하지만 실제로는

‘퉁’ 하고 뒤땅.

공은 ‘데굴데굴’ 굴러서 내 발보다 조금 멀리 가고,

나는 얼굴이 붉어진다.



처음으로

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학창 시절에도 스스로 학원을 찾은 적 없는데

이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골프 때문이 아니라

체면 때문에.


와이프에게 말했더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웃는다.

독학해, 한번 배워 봤잖아 “

그 한마디에,

내 결심도 멋도,

티샷처럼 땅에 꽂혔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군대에서 처음 담배를 배운 기억.

삽질 덜 하려고,

담배 피우는 무리에 껴보려고,

입담배로 시작했던 그 장면.


처음 폐에 연기가 닿았을 때,

내 몸은 제대로 반응했다.

“콜록콜록.”

그건 아직 내 몸이

순진하고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그 담배는

전역하면 멀어질 줄 알았다.

근데 사회는

그걸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동기 따라,

선배 따라,

‘관계’라는 이름으로.



골프도 똑같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나서서 무리에 들고 싶었고,

처음엔 ‘재미’였지만

지금은 ‘예의’ 같은 게 되었다.


거절하면 안 될 것 같고,

빠지면 손해 보는 느낌이고,

갈 때마다 민망하지만

안 가면 더 껄끄럽다.


그렇게

내 마음보다,

사회와 체면이 나를 먼저 필드로 데려간다.



그러다 보니

이젠 이게 내 의지인지

그냥 누군가의 틈새에 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혼자선 잘 안 치지만

약속이 생기면

왠지 모르게 클럽을 챙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핑계는 잘 붙는다.

“이번엔 괜찮겠지.”

“공기도 좋고.”

“운동도 되고.”


어딘가 담배와 같다.

내가 피우는 게 아니라,

피워야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도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없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티박스에 선다.


공보다

내 마음이 더 떨린다.

나만 그런가 싶지만,

또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결국, 골프도 담배도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이젠 핑계 속에 감춰진 나의 체념이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참 애석하다.


———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공을 휘두른다.

스코어보다 관계 배우고

나와 함께할 동료를 찾기 위해


나 학원 좀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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