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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 Love Potion No.9

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by 라이언윤

청초한 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어릴 적엔 그냥 더운 계절이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젖는 계절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계절과 인생은 닮아있다.



봄은 10대와 20대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눈앞의 것들이 다 반짝이고,

때로는 혼란스러워도 희망이 앞섰던 시절.


여름은 30대와 40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땀 흘리며 살아내야 하는 계절.

뜨거운 책임, 때론 번민.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안에 싱그러움도 있다는 걸 안다.


가을은 50대에서 60대.

수확과 성찰.

물러나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조용히 구분하게 되는 시간.


그리고 겨울은 70, 80대 그 이후.

모든 것을 안아주는 계절.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계절.

그러나 눈밭 위 첫 발자국처럼

가장 선명한 흔적이 남는 시기.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단지 자연의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몸, 마음, 영혼

그 모든 것이 10년마다 새로운 리듬으로 바뀐다.


그리고 나는 믿게 되었다.

이 리듬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나누는 조율이며,

이 시대를 통과하는 영혼의 연습이라는 것을.



브런치의 시작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처음 적기 시작했다.


그날의 슬픔은 유난히 조용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의 기운을 느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브런치 글을

우리 딸에게 남기고 싶었다.


실록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시대를 살며 느꼈던 갈피들을

종이 위에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종이는 흐름에 따라 온라인으로 옮겨졌고

내 고민과 마음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방향이 되길 바란다.



나는 바란다.

딸이 내 글들을 ’ 이해’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언젠가,

그의 계절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할 즈음,

이 글이 마음의 바람이 되어

등 뒤에서 가볍게 밀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시대를 함께 걷는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마음이 잠시 쉴 수 있는 그늘이었으면 좋겠다.


(부제 : 여름의 너에게)


사랑하는 딸아,

오늘은 네가 여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땀이 나는 계절,

무엇을 하든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시간.

마치 너의 30대, 40대처럼.


네가 어떤 날은 무겁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왜 이렇게 뜨겁기만 한지 모르겠다는

그 말들이 문득 생각났어.



여름은 생각보다 길단다.

봄처럼 가볍지 않고,

가을처럼 조용하지도 않지.

해가 길어 하루가 긴 만큼,

해야 할 일도, 견뎌야 할 마음도 많아지는 시기야.


이 계절에는

삶이란 단어가

“살아낸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단다.

선택은 많지만 자유는 줄고,

가능성은 가까이 있지만 여유는 멀어진다.



아빠도 그랬어.

이 시기를 지나며

‘나’보다 ‘남’을 더 많이 생각했고,

해야 할 일에 치여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잠시 잊었지.


하지만

그 안에도

배우는 것이 많았단다.

책임은 때때로 나를 성장시켰고,

실패는 생각보다 깊은 뿌리를 만들어줬어.



그러니 딸아,

너무 잘하려 하지 않아도 돼.

모든 걸 이룰 필요도 없어.

여름은 이기기 위한 계절이 아니라,

견디며 채우는 계절이니까.


불안해도 괜찮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괜찮아.

다만,

너 자신만은 잊지 않았으면 해.


네 안의 열기,

네 안의 바람,

그리고 네가 원했던 첫 마음.



언젠가 네가 생각 할꺼야

“이 삶은 누구를 위한 걸까.”

그 질문을 생각해 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는 충분히 성숙하다는 뜻이란다.


세상이 네게 바라는 대로 살지 않아도 돼.

가끔은 네가 너를 바라보는 대로

걸어가도 괜찮아.



여름을 걷는다는 건,

늘 정답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때로는

정답 없이도 걸어가는 걸 배우는 시간이란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너답게 걸어가렴.

흔들려도 괜찮고,

잠시 멈춰 서도 좋아.


햇살이 너무 뜨거울 땐

그늘로 들어가 쉬어도 되니까.



너의 여름이

지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 여름을 돌아봤을 때,

참 잘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기를.


늘 응원해,

사랑을 담아

아빠가.


———


“내 여름은 아직 남았고,

이 열기 속에서도

나는 매일 조금씩 나를 지어가고 있다”


기억해, 그 여름, 남해를. 그리고 들어봐, Love Potion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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