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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마지막 손님

빨간 스카프

by 양다경

중년의 택시 운전자 허영. 택시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손님이 많은 날이다. 그 덕에 흥얼흥얼 콧노래가 멈추지 않고 술술 나온다. 그는 매일 이렇게 뒤돌아볼 새도 없이 택시가 바빴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동안 빚도 여간 진 것이 아니니. 이런 날은 집에 서둘러 들어가지 않고 연이어 손님을 태워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그런 마음이 깊어지자 주위는 차츰 어둑해지고 어둠이 깔리는 시간, 사람들의 흔적이 드문드문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손님만 있다면 택시를 운영할 생각으로 투영되니. 그러다 장거리 욕심까지 더해져 도로를 벗어나 가로수만 홀연히 있는, 어느 마을까지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그곳은 간혹 거리의 불빛만 간간이 나오고 차도는 한산함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주위로 휑하니 작은 밭들이 널려 있고 그 밭 너머로는 꽤나 오래된 연수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다. 허영은 왠지 주변이 차지하고 있는 적막함에 마을을 들어서는 입구부터 왠지 서늘함을 느꼈다.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곳. 그러나 이런들 저런들 어떠랴, 한 손님이라도 더 받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그때였다. 허영의 바람처럼 저 멀리서 그의 택시를 부르는 손짓이 어슴푸레 보인다. 그는 피곤의 어깨가 무거워도 또 손님을 보니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손님은 흰 원피스에 빨간색 스카프를 휘날리는 긴 머리의 아가씨였다. "이런 곳에 이 시각에 아가씨가 있네..." 그는 의문의 생각이 들면서도 그녀의 손짓을 따라 차를 멈춰 섰다. 멈춰 서니 긴 머리가 반쯤 얼굴을 가린 핏기가 없고 창백한 아가씨. 그녀는 목에 빨간 스카프를 촘촘히 두른 채 택시에 시선이 고정되어 서 있었다. 그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니 너무 빈약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렇게 아가씨는 말조차 꺼내기 불편할 정도로 차가운 기색이었으니. 그러니 허영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 손님을 태워도 애써 침묵해야겠다고. 아가씨는 그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역시나 아무 말 없이 택시를 탄다. 하지만 아가씨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입술을 뗐다. "팔정읍 5리"라는 주소를 속삭이듯 말을 한 것이다. 그 목소리는 약간의 떨림이 있고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아 가늘었다. 그는 누차 물어볼 생각도 없이 "네, 출발하겠습니다!" 하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빠르게 속력을 올리고 달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가씨라 룸미러조차 마주치지 않도록 신경 쓰며. 그는 그 생각이 겹치자 더 운전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주 잠깐, 자신도 모르게 아가씨가 앉아있는 아래쪽을 언뜻 보게 되었다. 그녀의 스카프가 늘어져 허영이 힐끔거릴 정도였던 것이다. 그는 아가씨의 하얀 옷에 너무나 튀는 긴 빨간 스카프. 뭔가 짙은 빨간 색깔에 오싹한 느낌을 받는다.


이윽고, 택시는 그의 이런저런 생각을 멈추듯 곧 목적지에 이르렀고. 이르고 보니 그곳은 예상치도 않은 상중(喪中)이라는 등이 보이는 상을 치르는 상갓집이었다. 구슬픈 곡소리가 새어 나오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애도하며 드나들고 있었다. "여... 여기 맞으실까요?" 허영의 머뭇대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 목적지임을 확인한 그녀는 차에 내리면서도 여전히 긴 머리가 가려진 얼굴로 그를 덤덤히 대했다. 그리고,

"아저씨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여긴 저희 집이니 돈을 가지고 나올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방향은 오로지 그 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궁금증이 올라와 여러 말을 묻고 싶었지만 아가씨의 처연한 모습에 간단하게 답했다.

"네, 네 그렇게 하세요"

아가씨가 자기 집이라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믿고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간혹 지갑을 잃어버린 손님들이 그리하기도 하기에. 그러다 문득 자신의 택시가 상갓집 앞이라는 사실에 몸이 움츠러드는데.

"이 집에 누가 돌아가셔서 이리도 슬픈 곡소리가 하늘을 찌루누" 하며 무상한 삶이란 생각이 들어 한숨짓는 허영. 차 안, 고개를 뒤로 젖혀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그는 왠지 아가씨가 늦어지는 것도 같길래 젖혔던 고개를 세워 상갓집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 집은 분주하다기보다 단출하게 상이 진행되는 것 같았고, 곡소리만 들릴 뿐 아가씨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허영은 수지맞은 날에 상갓집에 오니 묘한 생각이 들며 아가씨가 돈을 가져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그는 조바심이 나서 아가씨를 더욱 기다리게 되고. 그러나 돈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간 아가씨는 나올 기미가 없으니. 허영은 점점 초조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답답함에 담배를 꺼내 피려다 말고, 택시에 내려 그 집, 상갓집에 성큼 발을 디뎠다. 상갓집에 문제를 일으키고 쉽지 않으나 일한 몫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상갓집을 들어서자 한 젊은 청년이 발 빠르게 다가왔다.

"누구신지?" 청년은 상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가 낯설었는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아니, 여기 사는 아가씨가 내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비를 주지 않네, 무슨 이런 경우 없는 일이. 집에 들어가서 가져온다고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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