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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시작

거짓말

by 양다경

출근길, 하늘을 가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청년의 선한 눈을 가득 채우고. 채운만큼 눈은 아릿해져 한쪽 눈을 찌푸리는 그는 26살 민도현이다. 깔끔한 회색 슈츠, 네이비 넥타이, 거기다 새벽부터 닦은 반짝이는 검은색 구두. 막 사회 초년생 티를 팍팍 내며 직장으로 가는 그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민도현은 파란 학교 2학년 3반으로 부임한 젊은 총각 선생님. 그는 잘생긴 이목구비 탓에 못내 여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러니 학교로 들어설 때마다 도현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춘기 여학생들. 그가 인사를 받아주면 여학생들은 괜스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면 도현은 살짝 웃어주었는데 그 미소는 그윽해 밤하늘 초승달처럼 빛났다. 그 덕에 그는 날로 인기가 많아지고. 급기야 학년 초 가정방문이 이어진 날로부터 소문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출처는 하보람의 말로 씨앗이 되었는데.

​"있지... 민도현 선생님은 나를 엄청 좋아해... 어떡하지... 우리 집 가정방문하고 간 그날부터 주말이면 집골목 앞에서 날 기다리지 뭐야" 보람은 코를 찡긋 거리며 애교 섞인 말투로 이솔에게 말했다. 코 찡긋 거림은 보람이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버릇이지만. 알리 없는 이솔은 총각 선생님이 제자 집 앞에서 서성인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진짜야? 진짜? 그 말?" 이솔은 보람의 말이 사실인지 재차 확인한다. "그럼 진짜지! 기다리다 내게 고백도 했어~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하며 고개를 떨구는 보람은 말을 강조하듯 입을 오므린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야, 비밀!! 꼭 지켜줘~" 하고 보람은 다짐을 받으려는 듯 이솔 얼굴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이솔은 공책을 펼치다 말고 "어... 어 그래, " 하며 얼떨결에 답했지만 듣는 순간부터 입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이솔은 때때로 들은 얘기를 친구들에게 죄다 말하고 싶어 졌고 언제쯤일까, 타진하는 하루가 매일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보자 그날따라 더욱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입이 달싹거린 이솔. 그러고 보니 유달리 공부도 잘하고 이국적 외모를 가진 하보람이라 민도현 선생님의 관심을 살 법도 하다. 그 생각이 이르니 이솔은 혼자 안고 있는 보람의 비밀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녀가 화장실을 간 사이 주변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풀어놓는다.

​ "야! 야! 너희들 그거 아니? 담임 선생님 말이야, 보람이네 집 앞에서 매일 서성이고, 보람을 기다리고 그런다는데, 좋아하나 봐" 이솔은 보람에게 들은 말보다 한층 부풀려 정민에게 말했다.

"야, 나에게도 말하던데 민도현 선생님이 저를 뭐 특별하게 여긴다나. 하긴 사는 동네도 가깝잖아" 정민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윤정도 정민의 말을 동참하듯이 말을 뱉었다.

"뭐? 너희들도 들었어? 그거 진짜야? 나도 듣고도 놀랬어, 근데 보람이 아무 말하지 말라더니... 다 말했구나!"

​이솔은 정민과 윤정의 말에 여태껏 보람의 비밀을 약속한 것이 억울하다.

"다 알고 있는 얘기네, 그럼 것도 들었니? 세상에 고백도 했다지 뭐야." 이솔은 허무하듯 얘기를 다 쏟아냈다. 그러니, 정민과 윤정 외에도 그 주변의 아이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모여들기 시작하고. "정말, 그거 정말이니? 우와 대박사건" 입이 가볍기로 소문난 민지의 귀에까지 박히듯 들어갔다.

​그 후로 소문은 온 반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지더니 전 학년으로 순식간에 퍼져갔다. 급기야 그 말은 교사들에게까지 나아갔고, 학부모, 교장선생님의 귀에까지 흘러들어 가게 되는데.

교장선생님 최성철은 설마, 하면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그 일로 학부모에게도 항의 전화까지 오니 사건의 심각성이 커진다.

​"이 일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선생님이 특정 여학생을 마음에 둘 수 있어요?"

학부모 여럿은 일의 문제를 부각하며 교장선생님 최성철에게 전화를 해댔던 것이다.

"아 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진위 여부를 밝혀서 민도현 선생님을 징계하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성철은 난감하다는 듯이 연신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학부모에게 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성철은 당장 민도현 선생님을 불렀다. 그는 사실 워낙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인 탓에 소문이 온 사방에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영문도 모른 채 성철 앞에 앉았다. 성철은 머뭇거리듯 그 소문의 일을 꺼내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민도현 선생님은 얘기를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지고 당혹감을 드러냈는데.

​"절대 제가, 절대, 제자를 이성으로 보고 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교장선생님" 그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듯 말을 하며 입을 꽉 물었다.

"아니, 지금 그 소문이 학교 전반을 흔들고 있는데 무슨 소리십니까? 민도현 선생님, 저도 그리 생각 안 하려고 해도 거짓이라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에요." 성철은 말을 이으면서도 한숨을 지었다. 도현은 생각지도 않는 문제에 어이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자신이 이런 일에 휘말릴 거라곤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단은 소문이 파다한 만큼 언행에 주의하시고 경위서를 쓰세요!" 당부의 말을 연거푸 하는 교장선생님, 성철. 그의 눈매는 사나웠다. 도현은 성철의 말을 듣고 교장실에서 나와 휘청거리다 섰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뭐지...' 도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교실로 가는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 보니 복도마다 그만 보면 학생들이 수군거렸던 일이 떠오르며. 그건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점점 더해지면 더해졌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소문은 커지기만 했다. 그러니 도현은 일할 의욕이 떨어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학생들과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선생님과 제자가 그렇고 그렇다는 헛소문은 진실인 마냥 누군가에 의해 교육청까지 들어가고. 그는 결백을 주장해도 진상과 관계없이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 그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는 날이 많았으며. 그래서 교사 일을 못한다는 생각에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한 도현.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때때로 창밖, 학생들의 소리가 닿는 곳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비가 몰아치듯 쏟아지는 어느 날 밤, 그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으로 바닥을 뒹군다. 그리고 뒹군 바닥에 새끼손가락을 칼로 베어 쓴 '선생님'이라는 단어. 그 단어는 붉게 번지며 그의 손등을 적셨다. 도현은 아랑곳없이 그대로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 장시간 나오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발견했을 땐 그는 목을 매 안타깝게도 극단적 선택을 한 뒤였다.

그 일은 한 젊은 선생의 오해에서 비롯된 생의 비관이라는 명목 아래 한때 떠들썩했긴 했지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실의 존재 여부는 희미했고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다. 하보람도 민도현의 소식에 충격을 받고 처음엔 죄책감이 들어찼으나, 하나 고 3이 된 보람은 엄마의 공부에 대한 닦달로 차츰 먼 이야기로 바래졌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은 흐르고 하보람은 대학생이 되었다. 생각보다 대입 성적이 잘 나온 탓에 바라는 대학에 진학한 보람. 그리고 입학하자마자 한 학년 선배인 잘 생긴 의대생 남자친구, 우정이 생기고. 우정은 보람에게 첫눈에 반했다며 그녀에게 구애를 했었더랬다. 보람은 드물게 맑은 눈과 다부져 보이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그의 청을 받아들였는데. 그리고 그 후, 우정이 어디서든 보람을 무척 아꼈기에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도 사게 된 그녀. 그녀은 보란 듯이 누구에게나 동경이 되는 대학 생활의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3년 후,

"오빠 나 많이 좋아해" 보람은 설레는 마음을 품고 우정에게 물었다. "좋아하지 않는데...... 뭐~ 좋아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거 같은데~?" 하며 씽긋 웃어 보이며 말하는 우정. 보람은 그의 말이 마치 고백을 받은 것 같기만 하다. 보람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에게 입술을 살포시 갖다 댔다. 그런 그녀를 우정은 살포시 안아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둘은 3여 년간의 결실을 맺듯 보람의 4학년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니 우정은 보람에게 너무나도 잘했다. 그녀가 늦게 일어나도 그가 아침을 준비했고, 모든 집안일을 직접 다 챙겼다. 그러니 보람은 그와의 신혼생활이 꿈결같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고 무슨 일인지 보람은 이유 없이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계속된 기침으로 생활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급기야 결국 직장에도 나가지 못하고 몸소 눕게 되는데. 우정은 그런 그녀를 부축하며 곁을 지켰다.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 마실 거 줄까?" 그의 세심한 보살핌에 그녀은 연신 감동했다." 오빠를 봐서라도 빨리 털고 일어나야 되는데..." 하지만 보람의 말과 달리 그녀의 몸은 더욱 악화되었고, 우정이 하는 병원에서 모든 검진을 마쳤지만 딱히 원인이 없는 병이라 하며 지속됐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보람은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우정이 쉬는 날이면 곁에 있는 그녀의 먹는 거 입는 거까지 챙기게 되었다.

​그러자 보람은 뼈가 앙상한 모습으로 침대에 항상 누워있게만 되었는데 "미안해, 오빠. 내가 아파서..." 그녀의 그 말은 마지막을 알리는 유언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녀의 말을 들은 우정은 여느 때와 달리 갑자기 얼굴이 차가워지더니 그의 눈꼬리는 위로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목을 손으로 쓰윽 훑더니

​"음... 이런, 그렇게 미안할 거 없어 모든 일은 너로 인해 생겨났으니. 네가 마무리 짓는 거뿐이야" 그는 뜬금없이 보람을 날카롭게 보며 말했다.

"뭐? 뭐라고 했어 오빠, 갑자기 무... 무슨 소리야... 오빠 무슨 마무리..." 보람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듯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너 민도현선생님 알지? 너 고 2 때 담임이던, 나 그 선생님과 7살 차이 나는 동생이야, 친형제" 말하면서도 도현이 생각이 나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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