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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by 양다경

딸이 여섯, 딸 많은 집에 태어난 10살 순이. 입을 덜자는 목적으로 부모는 순이를 부잣집에 식모로 팔았다. 아니, 부모는 미자네가 학교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학교도 못 보내고 못 먹이니, 백번 만 번 생각해 봐도 차라리 부엌데기가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길로 순이는 집을 떠나 미자네 식모로 들어가게 되었고, 미자는 말과는 다르게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저 어려서부터 밥, 설거지, 집안일만 시키는 미자. 그래서 그녀는 손이 거칠어지고 하루도 바삐 살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런데 그래도 그녀에게 잘해주던 이가 있었으니 미자네 집 외아들, 최일성이었다. 일성은 12살로 순이보다 2살 많았는데 그녀를 늘 안쓰러워하며 따뜻하게 대했다. 그러니 순이도 일성에게 알게 모르게 의지하게 되었고. 일성의 어머니, 미자는 그런 둘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그럴 때마다 순이를 데려다 매질을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일성에게 눈빛이라도 주는 날엔 미자는 그녀를 창고에 가둬 하루, 이틀 굶기기가 일쑤였는데. 미자는 그런 둘이 늘 석연치 않았고 엮어질까 불안했다. 그래서 아들, 일성이 중학생이 되자, 순이와 떼어놓을 명목으로 서울 삼촌댁으로 일성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순이가 20살이 되던 해. 그 사이 일성은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던 일성. 제대하고 집으로 왔던 날, 자신의 본가를 살펴보러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순이를 볼 심상이었다. 그래서 문밖으로 마중 나온 그녀를 보자 일성은 반갑기 그지없었고, 한층 성숙한 둘은 연민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이에 미자는 극도로 둘을 경계했지만,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들른 탓에 뭐라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가 계모임을 갔던 날, 일성과 순이는 그동안 숨겨온 마음을 고백하며 금단의 선을 넘고 말았는데. 몇 달이 지나고 헛구역질하던 그녀. 순이는 자신이 일상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아챘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갖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하며 기뻐하는 순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미자 몰래 일성에게 다급히 전화를 해 알리고. 그러니 그 일로 그는 당황해 마지않다가 미자에게 그녀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고. 하지만 미자는 아들 앞길 막는 일이라며 노발대발하며 머리를 동여매고 드러누워 반대했다. 그리고 순이를 창고에 가둬 이 주일도 넘게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도 주지 않았는데.

​그녀는 서서히 말라갔고, 그녀의 안색은 창백해져만 갔다.

​"죽기 전에 오빠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하는 순이. 그녀는 광대가 불쑥 튀어나오고 눈은 퀭했으면 손발은 점점 차가워졌다.

​그때였다.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마음에 품고 있던 일성이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다. 순이는 그를 보자 기쁜 마음에 "오빠!!" 하며 몸을 일으켜 바라보고. 그런데 일성은 손에 망치를 들고 음산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녀는 순간 그에게서 낯선 무게의 공기를 느끼는데. 하지만 그동안 그리움이 짙어진 탓에 일어서 일성에게 다가가며

"오빠... 오빠 보고 싶었어" 하고 울먹거리는 그녀. 그러다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려 하고. 그런데 그는 그런 그녀를 보고도 냉혹함이 감돌더니 잠시 침묵하다 불쑥 손에 든 망치를 위로 치켜든다. 그리곤

"너 때문에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고 있어!!" 하고 고함을 치며 다가온 그녀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치는 것이다. 광기 어린 그의 행동에 순이의 머리는 움푹 패어 쪼개지고 피는 사방에 뿌려져 그대로 떨어졌다. 그녀가 쓰러지니 의미심장하고 오싹한 표정이 되는 일성. 그는 피범벅이 된 순이에게 다가가 그녀의 죽음을 막연히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일성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고향, 공무원으로 자리 잡았다. 미자는 동네방네 공무원이 된 일성을 자랑하며 떠들고 다니며. 연신 독자인 자신의 아들이 흠잡을 때 없다, 부추기고 있었다. 때문에 마을의 소문이 이어지고 딸 가진 집에서 중매가 줄지어 들어온다. 그중 고르고 골라 미자는 참한 연희를 며느리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시의원에 딸이고 부유한 집 여식이었기에. 살림살이도 조목조목 미자가 원하는 만큼 다 해왔다. 미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더 바랄 나위 없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다 이룬 것 같아 즐거워했다. 이제 떡두꺼비 같은 손주만 안아보면 된다고 생각하며 너털너털 웃는 그녀.

​그러나 아들 일성과 연희의 임신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시간만 흐르는데.

그러던 중, 한 해 두 해를 거듭하는 어느 날, 며느리 연희가 갑자기 밥을 시도 때도 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굶주린 것처럼 꾸역꾸역 먹어대는 것이었으니. 그러다 입덧을 하는 연희.

미자는 혹시나 임신일까, 하고 감격한 마음에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가니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닌 상상임신 증상이라고 하고. 미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연희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그리고 하루하루 그녀를 보며 못마땅하듯 투덜댔다.

그래서인지 연희는 그때부터 괜스레 미자를 보면 가시눈이 되어 노려봤다. 그건 시도 때도 없이 서로에게 행해졌고. 그러다 문득 미자는 빨래 개는 모습과 음식 하는 모양새까지 연희가 누군가를 닮아가고 있다, 생각했다. 그것은 미자가 느끼는 한 사람, 순이였는데. 미자는 연희의 행동에 섬뜩함을 느끼고, 일성에게 죄다 말했다.

​"쟤, 연희 말이야 하는 행동 말투가 그전 식모였던 순이를 닮아가고 있어." 미자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를 붙잡고 말했다.

"어머니, 무슨 소리세요, 순이는 죽었잖아요!" 그는 말하면서도 화가 나 얼굴이 경직되었다.

"아니, 꼭 된장찌개에 양파를 넣지 않는 것도 그렇고, 빨래를 개는데... 순이가 하던 것처럼 가로부터 접는 거도 그래." 미자는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린다.

"어머니 제발 그런 소리 마세요. 순이랑 결부 짓지 마세요!!" 그는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미자의 양쪽 어깨를 붙잡는다.

​하지만 그 후로도 미자는 점점 연희가 순이처럼 보였다. 미자는 창고에서 죽도록 만든 순이가 마치 연희에게 빙의한 것만 같은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자식을 못 갖는 것도 왠지 임신했던 순이의 목숨을 앗아가 벌 받는 것 같기만 한 미자. 점점 초조해지며 근심은 차곡차곡 쌓여 버거워졌다.

​이제라도 창고에 숨겨둔 그녀의 시체를 꺼내 제대로 묻어주고 굿도 해주고 싶어지는 미자.

​"일성아, 창고에 묻어둔 순이를 꺼내 화장이라도 시켜주자... 이참에 순이의 혼도 달래주고... 아무래도 연희가 하는 것도 그렇고, 애 못 갖는 것도 그렇고..." 미자는 글썽이며 일성에게 말한다.

"어머니, 제발...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도 연희의 이상한 행동을 알고 있었고. 또 자신이 순이한테 한 잔인한 일이 있으니. 엄마 미자가 꼭 약해빠진 모습으로 말한다, 치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복된 미자의 말에 어느 순간 흔들리고, 미자와 일성은 날을 잡아 창고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내려가 보니 벌써 수년이 지나간 후였으니. 창고는 거미줄과 벌레, 쥐들로 가득했다. 그는 큰 망치로 순이를 덮어놓은 시멘트 바닥을 깨기 시작했다.

깬 바닥은 틈 사이로 뼈만 놓인 그녀의 옷가지며 형체가 언뜻 보이는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창고의 불이 꺼지더니 주변이 암흑으로 변한다. 그리고 "오빠...... " 하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고 순간, 미자와 일성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이는 해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녀의 눈은 검은 자가 적은 흰자 투성이고, 입가는 괴기스럽게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자는 그런 순이를 대하자 처음에 벌벌 떨다, 이내 무릎을 꿇고 손이 마르고 닳도록 빌어대는데.

​"순, 순이야,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하다... 흑흑"

​그런데 일성은 순이의 영혼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리곤 갑자기 일어서더니

"썩 꺼져, 죽어서도 우릴 괴롭혀, 널 가만두지 않겠어!!" 하며 들고 있던 망치로 순이의 영혼을 휘젓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습 그대로 서 있고 입을 여는데.

"오빠... 오빠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난... 오빠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오빠... 오빠를 저주할 거야!!"

"안돼! 순이야, 제발 부탁이야, 널 위해 제를 지낼게 도와줘... 흑흑" 미자는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순이의 영혼에 망치질을 하는 일성을 뜯어말리는데.

"제발 일성아, 그러지 말아!!"

"어머니, 속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주한다잖아요!!" 일성은 그리 말하며 계속 망치를 이리저리 냅다 휘두르는데. 일순간 일성의 휘두르는 망치에 미자가 속수무책 머리를 맞고 만 것이다. 미자는 '악'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어, 어머니!! 어머니!!" 하며 일성은 찢어질 듯 미자를 향해 울부짖는다.

​그때, 지하에 사람 소리가 울리자 연희가 무슨 일인가, 창고에 내려와 보는데. 이미 미자는 머리에 쏟아진 피로 온몸에 젖어 있고. 일성은 엄마의 모습에 비관해 들고 있던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친 뒤였다.

연희는 고함을 치며 달아나고, 머리가 깨진 그의 머리를 순이의 영혼은 다가와 감싸 안는다.

그리고 "오빠, 나랑 같이 가... 우리 아기랑 행복하게 살아, 오빠..." 하는 순이의 영혼. 하지만 일성의 주위는 이미 검은 연기가 비장하게 퍼져나가더니 여섯 형체가 다가와 쩡쩡 울리게 호령한다. "최일성!! 최일성!! 최일성!!" 그렇게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낚아채는데. 그는 가기 싫어 발버둥 치며 바닥을 손톱으로 긁는다. 순이는 그 모습에 눈물을 흩뿌리듯 흘리고. 그리고 사력을 다해 그를 잡는다. 하지만 일성은 피를 덮어쓴 머리에 입을 쩍 벌린 채 "안돼!!" 하며 괴성을 치며. 나락의 저승사자 여섯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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