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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aki Jul 15. 2018

#12_풀 먹는 소의 우유가 핵심이다. 이즈니 버터

Isigny Butter by Isigny Sainte-M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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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Range Egg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 중에 하나가 Jamie Oliver의 요리책들이다.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 사진들,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에 담긴 이야기들을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즐거움이다. 그의 책을 보다 보면 항상 눈에 띄는 단어가 'Free-Range Egg'였다. 계란이면 계란이지 자유 방목 계란이라고 강조해서 표기해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항상 궁금해하며, 영국은 자연 방목 계란을 따로 팔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은 자유 방목 계란을 마트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내가 책을 샀을 때만 해도 계란은 계란이었지 계란을 낳는 닭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몇 해 전 우연히 Jamie Oliver 측과 일을 할 기회가 생겼었다. 결과적으로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그의 팀과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인상에 남았던 것 중 하나가 Jamie Oliver는 소와 돼지, 닭들의 생활환경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코멘트였다. 소와 돼지, 닭 한 마리가 살아가는 데 얼마만큼의 공간이 있는지, 공기와 햇빛은 잘 들어오는지, 어떠한 먹이를 먹고 있고, 어떠한 과정으로 가공되는지를 매우 중요시하고, 가능하면 그러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자 한다고 했다. 평소에 채소는 땅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니까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이 좋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육류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깊게 고려해본 적이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해,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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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방목의 중요성 


그러던 와중에 조엘 샐러틴이 쓴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모두가 대량 생산에만 집중을 하며, 가축보다는 사람이 편한 시설을 고집하고 있을 때 미련스러울 정도로 가축이 좋아하는 옛 방식을 고집한 조엘 샐러틴이란 미국 농부의 이야기였다. 소와 돼지, 염소, 닭 등이 스스로 서로의 영역을 만들어 가며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연환경이 가축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얼마나 이로운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은 뒤로 가능하면 좋은 환경과 좋은 과정으로 가공된 육류 제품을 골라서 구매를 하곤 한다. 내 몸에 좋은 것도 있지만 자연 방목, 친환경적인 방식을 고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들이 있다.


하지만 자연 방목 제품을 찾고자 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이기적인 이유는 그러한 제품들이 훨씬 더 맛있기 때문이다. 자연 방목이 된 건강한 닭은 스스로 흙 목욕을 하며 깨끗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살충제도, 항생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에서 스스로 풀, 벌레 등의 먹이를 찾아 먹기 때문에 계란의 노른자는 훨씬 더 진한 노란색을 띠고 있고, 계란을 깼을 때도 훨씬 더 탱글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물론 맛도 훨씬 더 진하고 고소하다. 이는 돼지나 소도 마찬가지이다. 그중에서도 맛으로 가장 큰 감동을 줬던 것은 자연 방목된 풀을 먹은 소의 우유로 만든 버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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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버터의 등장 


버터를 먹고 살을 뺐다던 그 분.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서 그냥 먹었더랬다. (출처 - SBS 스페셜)

어려서 버터는 그저 살이 찌는 음식이었다. 외국 사람들이 토스트에 버터를 잔뜩 발라 먹는 모습을 보면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저렇게 뚱뚱한 건가 싶었었다. 그랬던 버터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 주었던 것이 SBS 스페셜로 방송되었던 '옥수수의 습격'이었다. 버터를 먹고 살이 빠진 남자와 좋은 버터에 숨겨져 있는 비밀. 내가 가지고 있던 버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 있는 버터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1g에 9kcal를 가지고 있는 기름 덩어리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제대로 만들어진 좋은 버터엔 훨씬 더 좋은 것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즈니 버터의 로고와 다양한 제품 (출처 - 이즈니 버터 홈페이지)

그래서 먹기 시작한 게 프랑스에서 건너온 Isigny Saint-Mere Butter였다. 일반 마트에서도 구하기 쉽다는 편리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맛이 너무 좋았다. 발효 버터로써 우유에 약간의 배양균을 넣고 발효를 시킨 버터로써 그 맛과 향이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더 진하다. 빵에 발라서 그냥 먹어도 좋고, 요리에 넣으면 우유의 고소한 풍미를 훨씬 더 증폭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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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버터엔 좋은 떼루아가 있다 

이즈니 지역의 위치와 한가로운 젖소들 (출처 - 이즈니 버터 홈페이지)

이 버터가 가장 좋았던 이유는 풀을 먹고 자연 방목으로 키운 건강한 소에게서 나온 우유로 가공을 한 버터이기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 이곳 Isigny-sur-Mer 지역의 토질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이곳은 수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습지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6세기에 들어 근처의 바다가 후퇴를 하면서 습지의 물이 빠지게 되었고 그 위에 토양이 쌓이면서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습지였을 때 근처 해협의 바닷물과 섞이면서 좋은 미네랄들을 땅에 남겨놨다고 하니, 그 토양에서 자란 풀들 또한 풍부한 미네랄과 좋은 물질들을 잔뜩 머금게 되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일 듯하다. 또한 일 년 평균 170일 정도 비가 오고, 온화한 여름과 특별히 춥지 않은 겨울은 풍부한 풀의 성장이 일 년 내내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그 좋은 풀들을 소들이 먹으면서 미네랄 소금과 필수 지방산이 풍부한 최상 품질의 우유를 생산해 낸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프랑스 내에서도 품질 좋은 유제품이 나오는 손꼽히는 지역이 되었고, 이를 인증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에서 인증하는 AOC(원산지 명칭의 통제, 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를 받았다고 한다.  


원산지를 증명해주는 마크. 제품에도 작게 붙어 있다. (출처 - 이즈니 버터 홈페이지)

이렇게 생산된 우유들은 'the old-fashioned way'로 가공이 된다고 한다. 18시간 동안 배양액을 넣고 우유를 발효시킨 크림에서 버터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 때문에 이즈니 버터 만의 맛과 향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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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 버터로 만드는 빵이라니! 


현대백화점 이즈니생메르 베이커리 오픈 때 나온 보도자료 사진들

맛있는 버터가 들어가면 어떤 음식도 다 맛있어지지만, 빵을 만들면 그 풍미와 식감들이 더 풍부해지는 것 같다. 특히 크로와상과 같이 반죽 켜켜이 차가운 버터가 들어가야 하는 빵일 경우엔 버터가 맛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소에도 이즈니 버터로 빵을 만들면 참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또한 유명 고급 버터를 주재료로 한 베이커리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서 언젠가는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현대백화점에서 이즈니 버터를 내세운 '이즈니생메르 베이커리'를 오픈시켰다. (벌써 오픈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방문을 해보진 못했다. 이놈의 게으름이란...)


사실 이즈니 버터는 베이커리 라인이 따로 있지 않다. 버터와 크림, 치즈를 만드는 유제품 브랜드인데 현대 백화점과의 제휴를 통해 베이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백화점 식품관 내에 유명 음식점, 베이커리 등등을 입점시키는 게 백화점의 이슈, 매출과 직결되는 일이다 보니 고민 고민 끝에 이러한 이즈니 베이커리까지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선 질 좋은 버터로 만든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닐까 싶다. 오픈일에 이즈니 버터 측 대표와 프랑스 노르망디 주지사까지 참석을 했다고 하니,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도 매우 관심 가지는 일임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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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구운 빵에 버터 발라 먹기 

이즈니생메르 베이커리처럼 근사한 베이킹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만드는 것보단 먹는 쪽에 더 발달을 한 듯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버터는 어떻게 먹어도 다 맛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버터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건 따뜻한 빵에 그대로 발라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질 좋은 버터일수록 이렇게 먹어야 아깝지 않게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1. 좋아하는 베이커리인 잼앤브레드에서 미쉬빵을사 온다.


2. 부드러운 식감을 원한다면 그냥 먹고, 크런치한 식감을 원한다면 토스터기에 5분 정도 굽는다.


3. 여기에 실온에 두어 살짝 말랑해진 이즈니 버터를 바르고,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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