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탄산수 by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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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살 땐 No Gas?라고 꼭 물어보세요"
내가 처음으로 유럽을 갔던 2000년 대 초반에 유럽 배낭여행 카페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유럽에는 2가지 종류의 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물 안에 '가스'가 있으니 이를 꼭 확인하고 일반 물을 사서 마시라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물이기 때문에 비싼 물을 사서는 돈만 버린다는 것인데 이때 까지만 해도(지금도 좀 그런 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머리 속에 레스토랑에서 돈을 주고 물을 사서 먹는다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 물을 사서 먹는 것도 뭔가 억울 한데 그 가격이 한 병에 2유로로 (그 당시에 거의 3,000원에서 4,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난한 배낭 여행객에겐 매우 큰돈이었다. 그래서 매우 조심하면서 물을 사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잠깐의 방심으로 거금 2유로에 탄산수를 사게 되었다. 이미 산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한 모금을 마셨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입 안에서 탄산이 톡톡톡 터지는 게 뭔가 개운하고, 입안을 깨끗하게 해주는 느낌이 뱃속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 그 이후에는 계속 가스가 들어 있는 물만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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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수는 역시 Perrier?!
국내에서 처음으로 탄산수라고 인지가 된 브랜드는 '페리에'였다. 보기만 해도 뭔가 고급지고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초록색 유리병. 붙어 있는 라벨도 멋있었고, 페리에라는 이름 또한 유럽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것이 그냥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뭔가 대단한 음료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실제로 페리에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숍에서만 구매를 할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영에 가득 찬 느낌이 있지만 한 동안 탄산수가 마시고 싶을 땐 페리에를 마셨었다. 심지어 병을 모아 꽃도 꽂아 두곤 했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유럽 탄산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페리에는 탄산수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국내 시장에서 적절한 마케팅을 잘 펼쳐 나갔던 것 같다. 초창기에는 아는 사람들만 마시는 비싼 물과 같은 선망성을 만들어 냈고, 이 선망성이 점차 희석되어 ‘one of 탄산수’가 되어 갈 때쯤에는 새로운 플레이버를 넣은 제품들과 편의점 유통망을 통해 차근차근 국내 시장 장악력을 넓혀갔다. 하지만 해외 유명 작가와 지속적인 콜라보를 통해 감각적인, 세련된, 잘 나가는 브랜드의 느낌은 계속 유지를 하고 있다.
다행히도 페리에는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탄산이 들어갈 새로운 형태의 생수로서 국내 시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시장이 커짐에 따라 새로운 경쟁자들도 속속 등장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2013년에 150억 규모였던 시장이 2016년에는 1,600억 대의 시장으로 확장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중앙일보. 별별 마켓 랭킹. 2017. 9)
하지만 사실 내 입맛에 페리에는 맞지가 않았었다. 물 맛이 뭔가 찝찌름한 것(내 입맛엔 에비앙도 안 맞는다.)이 미네랄이 많아서 일 수도 있겠지만, 시원하고 달콤한 물 한잔을 마신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심지어 가격도 비쌌다. 새로운 탄산수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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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탄산수와 가짜 탄산수
탄산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탄산수가 나오는 냉장고도 나오고, 집에서도 탄산수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기계도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탄산수를 만드는 기계를 사볼 까 꽤나 고민을 했었다. 비싸게 밖에서 돈을 주고 사 먹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도 좋을 것 같았고, 탄산수로 야채도 씻고, 세수도 하면 다양하게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었다. 부엌에 더 이상 무언가를 늘어놓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구매하지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나 잘 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탄산을 주입시킨 탄산수는 진짜 탄산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탄산수는 자연적으로 이산화탄소가 용해되었는가(천연 탄산수),
이산화탄소가 인공으로 주입됐는가(인공 탄산수)에 따라 크게 나뉜다.
워터소믈리에 김하늘
엄청난 미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천연이거나, 인공이거나 맛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어차피 물맛 아니겠는가) 하지만 영양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공 탄산수는 정제수에 인공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넣은 물을 말한다.(광천수에 이산화탄소를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천연 탄산수가 없다면 이러한 제품을 찾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물리적, 화학적으로 정수 처리한 물이기 때문에 물 안에 각종 미네랄이 들어가 있지 않아 영앙학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탄산이 정제수에 자연스럽게 용해될 수 있도록 다른 성분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더 신경 써서 마셔야 할 것 같다. 반면 천연 탄산수는 땅 속에서 광천수로 존재했을 때부터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다양하면서도 많은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몸에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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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증명한 초정 약수의 힘
그래서 선택한 탄산수가 일화에서 출시된 '초정 탄산수'이다. 영국의 나포리나스 광천, 미국 샤스타 광천과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꼽힐 정도로 미네랄 함량이 높은 천연 탄산수이며(마케팅을 위해 세계 3대 광천수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출처나 근거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수백 년 동안 대대로 이어져 올 만큼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물이라고 한다. 조선 성종 때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초수(지금의 초정)는 청주의 동쪽 39리에 있으며 그 맛이 후추와 같다. 이 물에 목욕을 하면 몸의 병이 낫는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세종 대왕이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차 117일간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있고, 세조도 이곳 약수로 심한 피부병을 고쳤다고 하는 것을 보면 피부 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렇게 좋은 약수를 1972년 일화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탄산수 제품으로 탄생을 시켰다고 한다. 일화는 초정리에 있는 초정 원탕을 보유하고 있으며, 초정원탕 인근에서 초정 탄산수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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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
안타까운 점은 '초정 탄산수'를 제조 판매하는 '일화'에서는 이 매력적인 역사 이야기들을 브랜드 스토리로 적극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리에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브랜드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페리에 박사와 그와 얽힌 이야기, 페리에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철학과 스토리들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등등이 매우 잘 풀이가 되어 있다. 물 한 병을 마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물 한 병이 주는 다양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함께 소비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페리에의 이런 마케팅 방법은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매우 유효한 마케팅 방법이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초정 탄산수 홈페이지(일화 홈페이지의 일부 페이지)를 보면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내부적 여력이 되지 않거나 저작권과 관련된 혹은 다른 무언가의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안타깝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세계 3대 광천수인 데다 역사적 스토리까지... 세계적인 탄산수가 될 수 있는 브랜드 꺼리가 너무 충분하지 않나 싶다.
요즘같이 콘텐츠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브랜드를 키우고, 확장시키고, 사랑받게 하는데 브랜드 스토리가 얼마나 큰 힘을 주는 지를 실감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살려 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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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초정 탄산수 ㅔ
아쉽고, 안타까운 점과는 별개로 ‘초정 탄산수’는 나름 잘 팔리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연일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날에는 콜라 혹은 주스처럼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는 음료 대신 탄산수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엔 10병 정도의 초정 탄산수를 항상 넣어두곤 한다. 한 주도 되기 전에 모두 동이 나기는 하지만...
초정 탄산수는 그냥 마셔도 매우 좋지만, 좀 더 특별하게 즐기려면 역시 새콤 달콤한 과일청을 넣어서 마시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부지런하지 못하고, 요리를 즐겨하지 않은 나는 매실청, 자몽청 등등이 집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넣어서 마시지 못한다. 대신, 신경 써서 마시고 싶다고 생각이 들거나 집에 먹다 남은 레몬, 바질, 로즈메리, 민트류 등등이 있다면 초정 탄산수에 넣어서 먹는다. 레몬맛 탄산수를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싱그럽고 자연스러운 향기로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1. 물에 넣어 우려먹어도 좋을 만한 재료가 있는지 냉장고를 뒤져 본다.
복숭아, 포도, 수박과 같은 과일도 좋고,
오이, 바질, 로즈메리, 민트류와 같은 채소 혹은 향신료도 좋다.
2. 과일 혹은 야채를 예쁘게 슬라이스로 자른 뒤에 얼음과 함께 유리잔에 넣는다.
3. 초정 탄산수를 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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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탄산수와 통일교
초정 탄산수와 일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화라는 기업이 ‘통일교’와 관련 있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통일교가 어떠한 곳이고,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곳인지 전혀 알지를 못한다. 이탈리아를 좋아하고, 그들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대한 약간의 지식들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들의 믿음과 역사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지는 않다. 지식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고 이 글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철저히 브랜드적인 측면에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 괜찮다는 나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불쾌한 분들이 있다면 브랜드적인 글로 이해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