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asco by Taba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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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요리를 좋아한다. 사실 요리의 과정을 좋아한다기 보단 레시피를 보면서 식재료를 준비하는 과정과 요리가 끝난 뒤에 요리를 먹는 것만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 두 개의 과정만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이유는 요리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요리가 어렵기는 하지만 한식은 특히 어렵다.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의 비율 같은 건 항상 들어도 잘 모르겠고, 만들 때마다 매번 맛이 다르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양념과 김치찌개나 오징어 볶음에 들어가는 양념의 미묘한 차이는 절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노력과 연습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말하자면) 미국 음식들을 주로 만든다.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종에 따라, 인종이 처해졌었던 역사적인 상황과 지역에 따라 미국 내에서도 음식의 모습이 모두 다르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미국 음식은 캐서롤(Casserole)이다. 고기와 같이 중심이 되는 식재료에 약간의 채소들을 곁들여서 소스 혹은 시즈닝을 한 뒤에 오븐에 굽는 음식을 말한다. 다양한 양념을 적절한 비율로 섞을 필요도 없고, 굽고 찌고 삶고 튀기는 복잡한 과정이 거의 없다. 나처럼 불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최적화된 요리랄까... 냄비 하나에 모든 걸 다 담아서 오븐에 구운 뒤에 그 냄비 그대로 식탁으로 들고 가면 끝이기 때문에 조리 과정도 설거지마저도 쉬운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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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롤 옆엔 항상 이 소스가 있다
주로 크림소스와 치즈가 들어가는 다양한 캐서롤 요리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 편이지만, 핫소스를 뿌리면 더 맛있다. 느끼하기 때문에 뿌린다기보다는 그 매콤 시큼한 맛이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잘 잡아 주기 때문이다. 캐서롤이나 피자, 치즈 파스타와 같은 음식에는 한 두 방울 떨어트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맛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핫소스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어려서 배달시켜 먹던 피자에 항상 들어있었던 이 핫소스는 뭔가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상을 내게 주었었다. 뭔가 부족한 식재료의 맛을 채우기 위해 자극적으로 만든 소스라고 할까? 매운맛에 시큼하면서 화학조미료들이 엄청 들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식재료였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소스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 냉장고 1년 365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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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핫 윙을 만들 땐 핫소스가 꼭 필요하다.
핫소스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있지만 아마도 가장 대중적이고 많이 접해본 브랜드는 '타바스코'이지 않을까 싶다. 라벨이 없어도 병 모양 만으로도 브랜드를 인지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다른 브랜드의 핫소스들 보다도 내 입맛에는 제일 괜찮았다. 하지만 이 제품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Classic hot wings (출처-Food Network)'를 만들고 난 뒤였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레시피들 중에서도 'Classic'이라는 단어에 잘 끌리는 편이다. 뭔가 예전부터 먹었던 오리지널 레시피라는 느낌이 강해서 가능하면 'Classic'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레시피를 잘 선택하는데 이 핫 윙 레시피가 그랬다. 요리를 만드는 방법도 매우 간단했다. 닭 날개를 기름에 튀기고(나는 기름을 묻혀서 오븐에 구웠다. 튀기는 요리는 너무 무섭고, 어려우니까...) 다 익은 닭 날개에 소스를 묻히면 끝. 특히 그 소스가 매우 쉬웠는데 냄비에 타바스코 소스를 넣고 버터를 적당량 넣은 다음에 살짝 끓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원하면 우스타 소스를 좀 더 넣으면 되지만 안 넣어도 상관은 없는 듯했다.
이 요리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타바스코를 엄청 많이 넣는다는 것이었다. 항상 몇 방울 떨어트려 먹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타바스코가 '1 Cup' 단위로 들어가야 했다. 덕분에 나는 냄비 앞에서 타바스코 병을 열심히 흔들어 방울방울 방울을 모아 한 컵의 타바스코를 만들었다. 또 하나 놀란 점은 맵기만 한 줄 알았던 타바스코 소스가 엄청 시다는 사실이었다. 매콤 시큼한 맛 중에서 타바스코는 매운맛이었다고 인지했던 나에게 시큼한 맛은 나름 충격이었다. 특히 잘 구워진 닭 날개에 소스를 묻힐 때 닭 날개의 뜨거운 열과 함께 엄청나게 시큼한 향이 확 밀려 올라온다. 내가 뭘 잘 못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큼한 향이 많이 올라와서 레시피를 몇 번이나 다시 봤던 기억이 난다. 추후에 '수요 미식회 (맥주 안주 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에서 원래 미국 전통 핫 윙은 한 입 넣었을 때 시큼한 향이 확 올라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가 잘못 만든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시큼한 매운맛이 중독성이 있었다. 특히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맥주에 시큼, 매운 이 핫 윙은 진짜 찰떡궁합이었다. 처음엔 시큼한 향이 강하게 다가오지만, 한 입을 베어 물면 매운맛이 확 올라온다. 하지만 끝엔 묘하게 시큼하면서도 살짝 매운맛이 입안에 남아있는데 매운맛은 곧 사라지고, 그 향만 계속 남는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생각나는 맛과 향. 타바스코 소스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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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통의 타바스코 소스
이 요리를 계기로 타바스코 소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요리의 핵심 양념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는 소스. 그래서 이번엔 이 브랜드를 알아보기로 했다.
타바스코 소스(Tabasco Sauce)는 1868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에이버리 아일랜드에서 에드먼드 매킬러니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타바스코라는 이름은 멕시코의 타바스코 주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어서 그동안 이 소스를 홀대하고, 오해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창립자인 에드먼드 매킬러니는 원래는 은행원이었다고 한다. 평소에 먹는 밋밋한 요리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자 이 매콤한 소스를 개발했고, 이를 위해 멕시코 타바스코 지역에서 고추를 가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열매가 열리기도 전에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심어두었던 곳마다 고추들이 풍성하게 자라나 있었고 이 고추들을 가공하여 지금의 타바스코 소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소량으로 만들었던 소스가 주변 지역에 인기를 얻으면서 대량 생산화되었고, 150년이 넘는 지금까지 5대를 거쳐 이 에이버리 아일랜드에서 고추를 기르고, 소스를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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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스코 고추, 식초와 소금
내가 타바스코 소스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를 했던 것 중에 하나가 화학조미료가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뭔가 자극적인 이 맛을 만들기 위해 화학조미료의 도움을 분명히 받았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 소스에는 150년 전 레시피 그대로 타바스코 고추, 식초, 소금 만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나무 통에서 3년간을 숙성시킨다고 하니 공장에서 찍어내는 화학조미료 투성이의 양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무지하고, 선입견에 사로잡힌 아둔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브랜드를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위대한 브랜드 뒤엔 항상 심플하면서도 정직한 제조 방법들이 붙어 있는 것 같다. 타바스코 고추, 식초, 소금을 3년간 참나무 통에 숙성이라는 심플한 레시피도 그렇고, 잘 익은 고추를 판별하기 위해 '고추 색 판별용 나무 막대(Le petit Baton Rouge)'를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용한다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작은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면서 그들 만의 철학과 노하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 지금의 우린 잘 만들어진 핫 소스와 함께 그들의 시간과 철학까지도 소비하게 된다. 이런 작지만 중요한 것들이 오래가는 브랜드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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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맛의 변주와 활용법
하지만 하나의 핵심 재료로 오래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바스코 소스 또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할라피뇨, 치포틀레, 하바레노와 같은 다른 종류의 고추를 재료로 하거나 바비큐에 좀 더 적합하게 질감의 차이를 주거나 다양한 변주를 주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맛과 질감에도 불구하고 기존 타바스코의 병 모양이나 로고는 변하지 않은 채 일관성을 유지해준다. 특히 타바스코의 병은 소스가 줄줄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두 방울 씩 뿌려먹을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다. 이 또한 타바스코 소스를 만든 에드먼드 매킬러니가 먹는 순간까지도 고민을 해서 만들어 낸 디자인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그들은 지속적으로 타바스코 소스를 활용한 레시피를 만들어 낸다. 그저 피자 위에 한 두 방울 뿌려먹는 게 다일 줄 알았던 타바스코 소스는 내가 만든 핫 윙처럼 다양한 요리에 양념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야채나 감자튀김 등을 찍어 먹을 수 있는 딥 소스에도 활용이 된다. 가볍게는 팝콘에 뿌려먹기도 하고, 오븐에 구운 호박씨(미국 사람들은 할로윈 때 잭 오 랜턴을 만들고 나면 나오는 호박씨들을 모아서 오븐에 구워 먹곤 한다.)에 시즈닝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음료수가 아닐까 싶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블러드 메리(Bloody Mary)'에 타바스코 소스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에 소금, 후추, 우스타 소스와 함께 타바스코 소스를 넣은 이것은 흡사 '김치 주스'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외국에선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 해장술로도 많이 마신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뭔가 이 맛들의 조화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 타바스코의 다양한 활용법은 홈페이지에 친절히 나와있다.
https://www.tabas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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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Classic Hot Wings를 만들어 보자!
연일 35도 정도는 가뿐히 넘기는 여름날이 지속되다 보니 뭔가 입맛도 떨어지고, 좀 더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저것 먹다가는 배탈이 날 수 있으니 무항생제의 건강한 닭 날개를 가지고 'American Classic Hot Wings'를 만들어 본다. 신선한 샐러리에 핫 윙과 엄청 시원한 맥주까지. 이 정도면 이 여름도 잘 버틸 수 있을 듯하다.
1. 닭 날개에 소금, 후추로 간단하게 시즈닝을 한다.
2. 닭 날개를 기름에 튀겨도 좋고, 기름을 묻혀서 오븐에 바짝 굽도록 한다.
3. 닭 날개가 익어 가는 동안 냄비에 타바스코 소스 ½ Cup과 굵은 손가락 크기 정도의 버터를 넣는다.
4. 타바스코 소스와 버터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저어주면서 살짝 끓여준다.
5. 다 튀겨진 혹은 구워진 닭 날개에 소스를 끼얹고 잘 묻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