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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aki Oct 21. 2022

케케묵은 기분을 털어놓게 하는 와인

핀카 바카라 예야 2020 (Finca Bacara YEYA 2020)


깔끔, 깨끗한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남편의 요청에 후배가 사 온 와인이었다.

핀카 바카라 예야 (Finca Bacara YEYA).

인어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의 라벨이 딱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그렇다. 난 와인 라벨이 구매에 큰 영향을 준다.) 내가 또 그렇게 와인에 대한 일가견이 있다거나 취향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뭐든 마셔볼 수 있다면 환영이다.


마개를 따고 잔에 따르자 달콤한 과일 향이 밀려들어왔다. 향을 맡아도 이게 무슨 향인지를 잘 모르는 나였지만 열대 과일의 향이 지배적으로 느껴졌고 이 향들은 서서히 멜론, 리치의 느낌으로 분리가 되기 시작했다. 오! 향이 너무 좋다. 와인을 잘 모르다 보니 이렇게 향이 분명한 와인을 만나게 되면 왠지 모르게 뭘 아는 것 같아지고, 이 와인과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모금 마시니 의외의 크리미 한 느낌이 어느 순간 초록배 혹은 허브 같은 풀향과 신선함으로 마무리가 된다. 나름 와인의 기승전결이 느껴진달까. 강렬한 향에서 시작해서 크리미 한 질감이 무겁지 않도록 은은하고 싱그러운 풀향으로 마무리. 이미 한병의 와인을 마시고 살짝의 취기가 느껴지는 중이었으나 새롭게 리프레시되는 느낌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왔다.


와인을 마시며 나눈 대화들은 그저 밝기만 한 대화들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회사에 대한 고민,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등등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이 무거운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 담아두고 곱씹기에 이 와인이 너무 향기롭고, 가벼웠다. 와인을 홀짝 거릴 때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들도 고민들도 훌훌 날아가버렸던 것 같다.


—-

(이미지 출처 :콜라블)


와이너리 : Finca Bacara


지역 : Spain, Jumilla


품종 : Chardonnay and Moscatel blend


도수 : 12.5%


바디감 : 미디엄 바디


당도 : 드라이


마리아쥬 : 해산물, 감바스 등



핀카 바카라 와이너리는 2016년에 만들어진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다. 후미야 지역 포도밭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모나스트렐 품종을 중심으로 와인을 양조하는 곳으로 홈페이지를 보면 이 모나스트렐 품종에 꽤나 진심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모나스트렐 품종은 작은 포도알에 비해 껍질이 두꺼워 으깨서 즙으로 만들면 포도즙 대비 껍질의 비율이 높아 색이 진하고 타닌이 많은 와인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래서 주로 블랜딩을 위한 품종으로 사용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이곳 후미야에서 자란 모나스트렐은 이곳의 기후 영향을 받아 다른 지역과는 다른 탁월한 맛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해발 900m 높이에 위치되어 있는 포도밭은 연평균 강수량 300ml 이하로 매우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지만, 한낮에는 당도를 천천히 올리다가 밤에 기온이 떨어져 익는 것을 멈추고 신맛을 보존하여 당도와 산도의 균형이 좋고, 진한 색상과 부드러운 타닌을 함유한 포도가 생산된다고 한다. 여기에 신생 와인메이커들의 기술과 노력으로 블랜딩용으로만 활용되던 모나스트렐을 당당히 단일 품종 와인으로까지 끌어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묵직한 레드 와인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핀카 바카라의 시그니처 와인을 한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이 기분과 이 순간. 이 와인으로


이 와인을 마시기에 한가한 주말의 오후 2,3시 정도면 좋을 것 같다. 계절에 상관없이 햇빛이 화창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커피를 마시기엔 흥이 안 나고, 냉장고 속 맥주를 마시기엔 이 화창한 날씨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이 될 때 차갑게 칠링 된 YEYA를 마시도록 한다.


이미 카톡으로 서로의 근황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한 얘기도 또 하고 몰랐던 그 뒤의 이야기도 듣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하다 전 남친, 전전 남친 얘기부터 혼자만 삭히고 있던 이야기들까지. 주제와 맥락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면 웃고 떠든다. 이 와인의 매혹적이고 싱그러운 맛과 향의 힘을 빌어 꽁꽁 숨겨놨던 나의 기억과 감정을 풀어낸다. 이 한 병이 비워질 때쯤이면 쓸 때 없던 기억과 감정 대신 상쾌하면서도 기분 좋게 달달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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