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데리 달 네스폴리 ‘네스폴리노’ 산지오베제 멀롯 2020
내가 찾는 와인의 목적은 분명했다. 혼자서 영화를 보면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면서 홀짝 거릴 수 있는 와인. 가벼운 화이트보다는 레드가 좀 더 생각이 났고, 안주로는 감자칩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함께 했다. 평소에 가벼운 와인을 좋아하는 터라 너무 무겁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추천 해준 와인이 바로 이 [포데리 달 네스폴리 ‘네스폴리노’ (Poderi Dal Nespoli ‘Nespolino’)]였다.
와인을 홀짝 거리며 멍하니 TV를 볼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다리던 와중 남편이 오늘 저녁엔 계열사 치킨을 먹자며 이야기를 했다. 마침 목요일이었고 내일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뜨끈하게 열기가 올라오는 계열사 치킨을 한 손에 품고, 집에 가자마자 바로 먹을 세팅을 한다. 먹기 직전 15분 정도 냉장고에 넣었다 마시면 더 좋다고 하는데 15분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일단 열고 한잔 따른 다음 냉장고에 넣었다.
잔에 따르자마자 붉은 과실의 향들이 뿜어져 나온다. 내가 기대했던 딱 그 정도의 향이다. 지나치게 밀도 높지 않은 적당한 체리와 플럼의 맛이 느껴지고, 이를 초콜릿, 바닐라의 맛과 향이 감싸준다. 뭐랄까. 엄청나게 펑키하거나 독특한 맛의 특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당했다. 첫 모금의 느낌은 적당하다.라는 느낌이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셨으니 이제 치킨이다. 치킨을 한입 먹고 그 뒤에 한 모금을 마셨는데…
어! 맛이 달라진다. 너무 잘 어울리는데?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계열사 치킨은 후라이드 치킨이다. 계열사 만의 튀김옷이 있는데 딱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적당히 짭조름하면서도 후추향과 맛이 난다. 그런데 후추와 이 와인의 조합이 너무 잘 어울린다.
와인이 후추의 향과 맛을 더 끌어올리는데 여기에 붉은 체리와 오크향이 더해지면서 그냥 치킨이 아니라 고급 음식을 함께 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계열사도 너무 맛있지만) 셰프가 정성 들여서 만든 치킨 버터 소테(닭을 버터에 튀기듯이 굽는 방식)에 후추 등의 향신료를 넣고 졸인 와인 소스를 뿌린 느낌이랄까. 치킨 한입, 와인 한 모금을 번갈아 먹으면서 다시 한번 와인과 음식의 조화에 대한 감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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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폴리노 와인은 이탈리아 중에서도 맛의 도시라고 불리는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의 와이너리에서 온 와인이다. 나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도시 중에 한 곳이다. 볼로냐 파스타, 모르타델라 햄,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모데나 발사믹 등등 이곳은 이탈리아의 맛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이라니. 다시 한번 와인의 맛을 곱씹어 보게 된다.
와이너리 : Poderi Dal Nespoli
지역 : Bidente Valley
품종 : Sangiovese, Merlot
도수 : 13.5%
바디감 : 미디엄 바디
당도 : 드라이
마리아쥬 : 스파이시 소시지가 들어간 라비올리, 붉은 육류, 중간 숙성된 치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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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 이런 와인
떠들썩한 가족 모임이다. 하지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주말의 가족 모임. 조카들은 뛰어다니고 복작거림에 정신이 없지만 이 활기참이 좋은 오후이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냉장고 속 당근과 양파를 꺼내 볶아 라구 소스를 만든다. 파스타를 잔뜩 삶고 소스를 잔뜩 뿌리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치즈도 원하는 만큼 잔뜩 뿌린다. 맛있는 파스타에 조카들이 조용해지면 이 와인을 꺼내 파스타와 함께 마신다. 술을 마신다기보다는 반주하는 그런 느낌. 시끄럽고 정신은 없는 주말이지만 가족들과의 부대낌에 오히려 에너지를 받고 싶은 그런 날을 위한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