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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aki Nov 05. 2022

나에게도 플랜 B가 필요하다

Les Maoü Plan B 2020


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남아 있을까. 회사라는 테두리 속에서 월급 받고, 때 되면 나오는 인센티브에 다양한 복지까지 받으며 000 회사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더 이상 이 회사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아마 이 회사도 나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직을 고려는 해보지만 더 이상의 이직이 과연 정답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이 참에 나의 일을 해보면 어떨까.


나의 일. 나의 사업.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7년이 넘는 시간을 을의 입장에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만을 해왔던 나로서는 새롭게 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어려움,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들은 사업에 대한 재능이 애초부터 있던데, 나한테도 그런 재능이 과연 있는 걸까?


재능을 떠나서 나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뭘 시작하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뭘 하려고 생각하면 이게 과연 잘 될 까, 이미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하는 거 아닐까, 어쩌면 아무도 이런 일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하다 보면 내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어려운 경지에 막혀서 결국 난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면 들 수록 다시금 나의 생각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도 플랜 B가 필요하다.

내가 필요하던 필요하지 않던 플랜 B를 생각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회사를 떠난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할 때. 내가 뭘 잘하는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만 해봐야겠다.


—-

회사 동료와 와인을 마시다 이런 걸 깨닫게 되다니 좀 우습긴 하지만 그날 마신 와인의 이름이 ‘PLAN B’였어서 그랬던 것 같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이직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다 보니 우리에게 딱 맞는 이름을 가진 와인이 운명처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청사과의 상콤한 향과 자몽 같은 시트러스 산미가 적절하게 올라오는 첫 모금. 하지만 이 와인이 정말 좋았던 이유는 그 뒤에 올라오는 누룽지 사탕 같은 단맛이었다. 토스트한 빵 혹은 이스트의 향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큼한 그런 향이 아니라 은은하게 구수한 향과 적당한 단맛이 이 와인을 정말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반전의 매력이 느껴지는 와인이라니…

이런 반전 매력이 느껴지는 나의 플랜 B를 만들어 봐야겠다.


—-

내추럴 와인에 대한 정보 서칭 능력이 아직 부족한 나로서는 이 와이너리와 이 와인에 대해서는 아래의 정보 밖에는 찾지를 못했다. 론과 프로방스 사이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Garreta 부부가 만드는 와인이라고 한다. 그들의 정성으로 1년간 포도를 키우고 수확의 시기가 되면 11명의 일꾼들과 함께 정성껏 포도를 수확한다.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가 되면 그들은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전 10시에는 커피와 파테(café and pâté)를 먹고 2,3시간 일을 한 뒤에는 로컬 음식을 먹으면 와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4시 이후부터는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며 7시에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 릴랙스를 하고 9시에 퇴근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 남부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함께 커피와 파테를 마시고,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하루가 갑자기 부러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부럽다.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하고 갖고 싶은 시간들. 나의 플랜 B는 이런 시간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와이너리 : Les Maou


와인 메이커 : Vincent Garreta, Aurelie Garreta


지역 : Vaucluse (Between Rhone and Provence), France


품종 : 50% grenache Noir & Grenache Blanc, 50% Gros Vert


도수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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