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gna flor _ La mano nel fuoco 2020
인스타그램을 한창 뒤져보다가 너무나도 마셔보고 싶은 와인을 만났다. 일단 라벨이 심플했고, 직관적이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의 와인(프랑스 와인은 아직 뭔가 심오하고 어렵다.)이었다. 그것도 내추럴 와인! 뭔가 내 취향의 와인들을 만나면 거의 매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이 와인은 바로 집 근처의 보틀샵에서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화창했던 토요일. 주말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게 싫어서 잘 나가지는 않지만 이 날은 큰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고작 15분, 20분 정도의 거리지만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이 동네의 특성상 이 짧은 거리도 참 만만치가 않다. 일단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자는 남편의 말에 즐겨가는 카페에서 시원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잔 즐기고, 남편 사무실에 들러 고양이들에게 밥도 주며 오늘 외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보틀샵에 가면 항상 신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고 맛나 보이는 이탈리아 와인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들려도 매번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준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부담스럽지만, 그게 또 그렇게 고맙고 좋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고 반가워해준다는 게 점점 더 감사해진다.
반가운 인사를 마치고는 바로 돌진!
오늘의 와인은 빈야 플로르 (Vigna flor)의 ‘La mano nel fuoco 2020 (불속의 손)’이라는 강렬을 이름을 가진 와인이다. 총 4개의 빈야 플로르 와인들이 있었지만, 유독 그 와인에 눈길이 더 갔다. 일단 소믈리에인 마씨모가 추천한 와인이기도 하고, 홍차나 보이차의 타닌감이 느껴지는 오렌지 와인이라고 하니 궁금했다. 다른 종류의 와인들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여기까지만…
이 와인을 언제 마시면 좋을까?
평소 마시는 와인보다 비싸기도 했지만 다양한 풍미를 가지고 있는 와인이었기 때문에 그냥 막 마셔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남편이랑 둘이? 아니면 혼자서 한 병을 다? 아마도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이 미치고 나니 그녀가 바로 생각났다.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놀러 왔다.
신이 나서 와인을 연다. 와인을 따르자 잘 익은 모과향이 올라온다. 어릴 적 아빠 차에서 맡았던 달큼한 모과의 향. 어렸을 때 이 향이 좋다며 연신 향을 맡았는데 이제 그 향을 와인에서 맡게 된다.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생각 이상으로 산미가 높다. 하지만 잘 익은 과일들의 향이 산미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뒤에서 은은하게 허브의 향이 올라온다.
원래 오레가노 밭이었던 곳을 다 갈고
있던 뿌리와 줄길들을 그대로 땅에 묻은 채 포도나무를 심었대요.
와인에서 오레가노 향이 날 거예요,
아무래도 오레가노 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풀향 같은 것이 올라온다. 집에 있던 말린 오레가노 향신료를 꺼내 번갈아가며 맡아본다.
이 향이구나!
신기하다.
이렇게 직접 맡아보니까 너무 좋다.
진짜 재밌다.
이 와인 너무 좋다.
배 향도 좀 나는 것 같다.
이건 무슨 향이지?
홍차 느낌이 있어.
침전물이 많네.
흔들어서 함께 마시라고 했어.
오! 느낌이 또 달라.
잠깐 사이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신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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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 Vigna Flor
지역 :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파도바
품종 : 모스카토 잘로 100%
도수 : 12%
바디감 : 미디엄 바디
당도 : 드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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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마시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인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