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스마이어 리슬링 르 코타브 2016
어려서부터의 천성이 그랬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았고, 조용한 게 좋고, 침착한 게 좋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떨거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걸 보면 왜 저러나 싶다. 나의 이런 성향은 일을 할 때 아주 가끔 문제가 생긴다. 내가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오히려 괜찮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이 열정으로 전달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일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나의 연기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일이 너무 즐거워 죽겠어서 열정 넘치게 일하고 있는 중이라는 연기. 진심이 아닌 것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에 대한 두드러기가 있는 나는 꼭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진심을 연기하고 나면 꼭 탈이 난다.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며,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그나마 있던 열정도 사그라진다.
그래도 살다 보니 꼭 보이는 열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 혹은 무심해 보여도 차분하고 침착하고 세심하게 하나씩 살펴보고, 필요한 것은 집요하게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충분히 열정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꼭 억지 텐션으로 그 일이 너무 즐거워서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나의 노력과 성실함, 열정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주변에 있었다.
‘I’ 쪽 성향이 강하신가 봐요.
좀 더 하이텐션으로 해보세요.
회의를 하는데 왜 성향 얘기가 나오지? 충분히 해야 할 이야기들은 전달을 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할까? 애초에 회의를 하는데 왜 하이 텐션이어야 하는 거지? 그래. 모두가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일 수도 있어.라고 애써 생각해보지만 열정을 강요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다.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열정을 강요받는 날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금요일 밤이면 와인을 연다.
한 주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는 의미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오늘은 조스메이어의 리슬링 르 코타브 2016 (Josmeyer Riesling Le Kottabe)이다. 예전처럼 와인을 열자마자 벌컥벌컥 들이켜지 않는다. (맛있게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약간의 브리딩 시간을 주고 잔에 따르자 조약돌 같은 미네랄리티의 향과 희미한 꽃향기, 모과향이 난다. 그렇게 한 모금씩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와인을 마신다. TV를 보기도 하고, 중간중간 남편과 그날의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주말에 무엇을 먹고 어떤 일들을 할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니 와인이 향기롭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와인은 순전히 라벨 때문에 선택을 했다.
복잡한, 읽기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추상화 같은 느낌의 라벨. 항상 예쁜 라벨에 끌리는 나는 자연스럽게 이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뒤늦게 비비노를 통해 이 와인이 평점 높은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틀린 라벨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다른 것뿐이다.
그리고 그 다름이 오히려 더 특별해 보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이 와이너리, 와인 메이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더 직관적으로 전달될 수도 있고, 이 와인 만의 브랜드를 더 독특하게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냥 이 와인을 마시면서, 이 와인과 와인메이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와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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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알자스의 Colmar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도멘 조스메이어는 1854년 Aloyse Meyer에 의해 설립된 이후, 5대째 가족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도멘 전체를 관리하는 Celine과 와인 메이킹을 담당하는 Isabelle, 두 자매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2000년부터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25헥타르에 달하는 조스메이어의 포도밭은 유명한 그랑 크뤼인 Hengst와 Brand를 포함한다.
도멘 조스메이어는 그랑 크뤼 혹은 스페셜 뀌베 각각의 특징을 잘 전달하기 위해 예술가들과 협약한 아트 레이블을 1987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와이너리 : 조스메이어 Josmeyer
지역 : 프랑스 알자스
품종 : 리슬링 100%
양조/숙성 :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 진행
도수 : 11.5%
바디감 : 미디엄 바디
당도 : 드라이
<출처 : 서울 와인 앤드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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