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산타 루시아 카소나 게이샤
매일 아침마다 들리는 카페이면 인사도 좀 나누고, 대화 한두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런 걸 잘 못했다. 매일 같은 시간, 똑같은 텀블러를 내밀고, 항상 카페 라테를 시켰지만 마지막 주문을 하는 그날까지도 그 카페 사람들과 친해지지는 않았다. 워낙 사람들에게 치이는 게 일이다 보니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새롭게 만나고, 관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적이 있었다. 그땐 그랬었다.
그런데 남편은 좀 달랐다.
카페에 들어서면 매장의 직원들이 반갑게 이름을 불러 준다. 오늘은 어떤 원두가 좋은지, 어떻게 내리면 좋은지, 최근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커피 한잔을 내리는 동안 바리스타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 못지않게 낯가림이 심한 남편이 이렇게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게 내가 처음 느낀 커피의 힘이었다.
나에게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와 직장 친구가 전부였던 나에겐 놀라운 삶의 변화였다. 5살에서 10살 정도의 나이차에 직업도, 환경도 전혀 다른 친구들이지만 커피라는 중심 소재로 항상 대화가 이어진다. 그들 중 몇 명은 집에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낼 만큼 사이가 깊어졌고, 우리는 여전히 커피와 서로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여전히 낯을 가리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나와 남편에게 새로운 영감과 즐거움을 끊임없이 선사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로스터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친구가 원두를 볶았다며 ‘온두라스 산타 루시아 카소나 게이샤’를 주었다. 잘못 볶은 것 같아 맛이 이상할지는 모르지만 ‘갓두라스’라고 불릴 만큼 좋은 원두라며 부담 갖지 말고 먹어 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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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명 : 산타 루시아
지역 : Comayagua
재배 고도 : 1,500m 이상
품종 :카소나 (Casona)
가공 방식 : 워시드
화이트 플라워 / 베르가못/ 진저 / 슈퍼 클린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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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고는 조심스럽게 향을 맡아보았다.
나에게 익숙한 커피 향이라기보다는 뭔가 미묘한 향이 올라온다. 이게 뭘까 고민하다 보니 생강차에서 느껴지는 새콤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향인 듯하다. 커피에서 느껴지는 생강의 기운이라니. 재미있다 생각하며 한 모금 마시자 적절한 산미와 구수한 단맛의 조화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게이샤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그만큼의 화사함이 느껴지지 않아 의아해했지만 이건 또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원두를 준 친구는 원두를 좀 덜 볶은 것 같다 했지만 이것 만으로도 나는 너무나도 즐겁고, 감사하게 이 커피 한잔을 즐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