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리브레_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떠한 일이든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알 만큼의 시간과 경험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2022년의 일들은 좀 이상하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일들은 계속 꼬이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자꾸만 생기고, 무엇 보다도 누군가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일이 진행되었다. 내가 더 이상 이 일을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의 역할이 없어져감을 느낀다. 일에서 나의 존재감을 찾았던 나였기에 이 상황들이 버겁다. 무기력함이 나를 덮쳐왔다.
이는 단순히 일 때문에 만들어진 감정은 아닐 것이다. 40대 초반 삶의 변곡점에서 나오는 무기력함이랄까.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게 맞는 방향이었는지 갑자기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아니면 밀려오게 된 것인지 나는 어떤 의지를 갖고 있었고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어디로 나를 떠밀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게 하는 그런 무기력함이다.
이 무기력함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간다. 이 감정은 너무나도 쉽게 번져 나갔고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하고 쌓아왔던 시간들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점점 이 상황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나를 나아가게 했던 동력을 모두 잃고, 영원히 이 무기력함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2,3개월은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이었다.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 나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좀 더 분명하게 알아내는 그런 시간들이었고, 일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기꺼이 헤매는 그런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무기력함이 가끔씩 나의 발목을 잡고 있고,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좀 더 분명하게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무기력한 나와 헤어질 것이다.
이해를 하거나 개선하려 하거나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2022년의 나를 갉아먹었던 이 상황을 단호하게 잘라 낼 것이다. 그 기분과 감정들은 22년에 남겨두고, 나는 23년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2022년의 나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예가체프를 다시 한번 마신다.
이렇게 3번째 예가체프를 마셔본다. 여전히 향이 빠진 오래된 원두이지만 이 은은한 향긋함이 오늘은 나쁘지 않다. 정말 오래간만에 이 커피의 향기가 정말 좋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좀 더 분명하게 꽃향기가 느껴진다. 그동안 커피에서 느껴졌던 보라색 꽃의 향기가 아닌, 노란색 프리지아의 꽃향기가 느껴진다. 커피에서 봄이 느껴진다. 새로운 시작이 느껴진다.
2022년의 나와 헤어질 결심을 한 것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어디로 나아갈지는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면서 찾으면 된다. 지금 당장 답을 낼 필요는 없다. 조바심 내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이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