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가탕가리리 AA
지난 연말 연휴에 남편과 푹 빠져서 보게 된 드라마가 있었다. 딱히 선호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 제목 또한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런 흘러가는 말처럼 느껴져 그냥 그런 드라마 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다. 그랬던 드라마였는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푹 빠졌다. 바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이다.
자칫 단순할 수 있는 스토리에 의외의 사건을 집어넣어 긴장감을 주었고, 배우들의 연기가 이 스토리를 잘 받쳐주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드라마의 배경과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연출이 좋은 드라마였다. 보는 순간에도 재미가 있는 드라마였는데 이상하게 다 보고 난 뒤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나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일과 사람에 치여서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고, 그렇게 휘청거리는 몸과 마음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피해자인 척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되돌아오는 건 없다는 사실에 점점 더 위축되고, 외롭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 나를 아끼는 누군가는 나를 위로했을 것이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주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내 몸과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모든 걸 내려놓자 생각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는 하겠지. 내 몸부터 챙기고, 내 마음부터 다스리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러면 다시 기운을 차리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한 번밖에 못 사는데 불행을 안고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쏟아냈고, 마음의 짐처럼 가지고 있던 책임감이라는 것들을 내려놓으며 이기적으로 살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모든 걸 내려놓을 용기는 없었다.
지금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모든 걸 내려놓기에는 내 미래가 불안해지는 느낌이었고,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을 희생하자니 내가 너무 힘겨웠다. 여름이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자기 만의 밸런스를 찾았고, 자신 만의 행복을 찾았다. 그렇게 한다는 건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나는 그럴 용기가 그때도 지금도 없다. 내려놓지 않고도 내 삶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을까? 내 삶의 밸런스는 어떻게 잡아가야 할까? 이 질문은 아마도 평생을 가져가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마신 케냐에서는 덜 익은 과일의 산미가 튀었다.
하지만 이 늬앙스가 나쁘지는 않았다. 청사과에서 느껴지는 시큼한 산미는 있었지만 떫은 느낌은 없었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이 이 산미를 받쳐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 원두를 볶은 로스터는 원두가 가지고 있는 시큼한 산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시도를 했을 것이다.
아마 나에게도 그런 시도가 계속 필요할 것이다
내 삶의 밸런스를 완성시킨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은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밸런스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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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소 : 가탕가리리 Kathangariri Washing Station
생산자 : Kathangariri Coffee Farmers Cooperative
지역 : 키린야가 Kirinyaga
재배고도 : 1,750m
품종 : SL28, SL34, Ruiru11
가공 방식 : 워시드
자몽 / 청사과 / 크랜베리 / 오렌지 / 쥬시
출처 : 커피 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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