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 가정의 리듬에서 실마리를 찾다

by 나경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남편이 홈스쿨링을 제안했다.
여러 인생의 길이 있다고 늘 말하던 나였지만, 막상 그 말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찔했다.

아이와 가정보육을 했던 5년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4개월 된 아이의 어린이집을 찾아 헤매던 그때처럼, 선뜻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당연하니까”라는 이유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붙잡고 며칠을 곱씹었다.


학교라는 시간표를 덜어낸다면,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하지?
아이와 하루를 보낼 집, 책상 위에 놓일 책들, 내 몫이 되는 감정의 무게—

그 모든 생각이 주말의 독박육아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
장난감 정리를 하다 말고 멍하니 서 있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한숨이 길어지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6살이 되어서야 기관에 간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더 밝았고, 새로운 활동에도 금세 스며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일은 나에게 큰 안도감이었다.


'집에서의 시간만으로는 부족한 욕구들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채워지는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모든 게 매끄럽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안정적인 리듬 속에서 홈스쿨링이라니—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게다가 남편은 주말까지도 바쁜 날이 많았다.


아이와의 하루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은 끝에, 결국 남편은 내 편에 섰고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두 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옆동네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그 아이는 초등 입학 대신, 집에서의 배움을 선택했다고 했다.

책을 읽고, 악기를 연주하고, 동네를 탐험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초등 입학을 선택한 뒤에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홈스쿨링에 대한 작은 로망이 남아 있었다.
그 친구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고,

‘언젠가 우리도…’ 하는 희망이 아주 조용히 자리 잡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가 고학년을 앞둔 가을 끝자락, 그 친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학교라는 리듬 속에서 점점 피곤해 보였고,그 친구는 집이라는 리듬 속에서 눈빛이 더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현관 앞에서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게임부터 찾았다.

마치 그 시간이 하루의 무게를 지우는 작은 도피처인 것처럼.


반면, 그 친구의 하루는 전혀 다른 결로 흘러가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멈추지 않고 파고들고,

한 달 내내 탐구를 이어가다 가족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에는 돌에 꽂혀 있다고 했다. 산책길에 주운 돌멩이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백과사전과 자료집을 펼쳐가며 “이 돌은 어디서 왔을까? 왜 이렇게 생겼지?” 하고 질문을 이어간다고.


그러고는 한 달 동안 돌을 연구해 종류와 생성 과정, 이름을 정리하고

작은 ‘돌 전시회’처럼 가족 앞에서 발표까지 했다고 했다.
한 번의 호기심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한 달의 탐구로 이어지는 일상.

작은 주제 하나가 아이 스스로의 세계를 밀어 올리는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아이가 초등 생활을 3년 남겨둔 시점, 나는 다시 용기 내어 오래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시간표를 덜어내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


‘이 아이의 속도는 어디에 맞춰야 할까?’

‘세상이 정한 시간표를 덜어낸다면, 그 자리엔 무엇이 채워질까?’


그 물음의 실마리를 그 친구의 하루에서 조용히 발견했다.

자율성과 몰입의 흐름을 보며 우리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할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길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아주 작은 용기가 마음 한쪽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이 스스로 확장해 가는 하루 — 우리가 다음에 천천히 내디뎌 보려는 길과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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