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결심을 품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흔들림을 안고 하루를 산다. 만삭의 배를 쓸어내릴 때마다 첫째의 내일이 함께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아이의 속도를 떠올리고, 세상의 시간표를 생각하고, 이 길의 가능성을 적어 내려가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가 이미 방향을 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내가 적는 문장들은 결심의 선언이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이 잠시 머무를 자리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건 선택 그 자체보다, ‘왜 나는 이 결정 앞에서 계속 머뭇거릴까’라는 질문이다.
선뜻 확신의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길은 결국 아이의 삶을 위한 것이고, 그 무게를 아는 만큼 쉽게 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학교든, 홈스쿨링이든 결국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건 방식이 아니라 아이를 믿는 마음이라는 것.
그래서 지금의 나는 홈스쿨링을 준비하는 사람이기보다 이 모든 선택의 시작점에 선 ‘나’를 이해해보려 노력중이다.
어제는 홈스쿨링이 우리에게 꼭 맞는 길처럼 느껴졌고, 오늘은 학교라는 구조가 다시 단단하고 편해 보인다. 내일은 또 어떤 마음이 스며들지 모른다.
이 들쑥날쑥한 흔들림이 때로는 스스로도 답답하다.
확신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고, 선명한 방향을 정해주는 어른이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홈스쿨링이라는 길을 지나 건강하게 성장한 형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추천받았다. 택배 상자를 열자마자 웃고 있는 형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이유 모를 용기가 한 스푼 더해졌다.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보니, 그들이 지나온 시간도 처음부터 확신으로 시작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시간들은 모두 아이의 세계를 조금씩 넓히는 방향으로 흘러가 있었다.
그걸 읽는 동안, ‘완벽한 확신’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고민도 하나의 길” 이라고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길을 고르는 중이다.
아이는 결국 제 속도로 자랄 것이다.
그 옆에서 나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 또한 자라는 중이다. .
이 고민의 시간이,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조금은 환하게 밝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