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4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린이집을 알아보았다.
2년이면 충분히 아이에게 집중했다고 생각했고, 하루에 몇 시간쯤은 나도 숨을 고르고 싶었다.
‘아이도 집에서 나만 바라보는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겠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선심 쓰듯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작은 곳을 추천했지만, 괜한 욕심이 앞섰다. 선생님이 많고, 프로그램이 다양한 곳에서 아이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 때의 선택이 지금 내가 홈스쿨링을 고민하게 된 첫번째 계기가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더 즐겁게 성장할 거라는 내 믿음과 계획은 첫 등원 날 무너졌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어머니, 아이가 울어도 쳐다보지 마시고 그냥 가세요. 두 시간 뒤에 오시면 됩니다.”
우두커니 선 나를 향해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내 아이를 번쩍 안고 2층으로 올라가셨다.
바라보지도 말고 뒤돌아 나가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다들 그렇게 적응한다는 조언이 떠올랐다.
홀린 듯 발걸음을 떼어 집에 돌아왔다. 적막한 거실엔 아이가 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난감을 하나씩 치우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와 있고 싶어 하는 아이를 왜 낯선 곳에 두고 왔을까.’
‘지금 얼마나 나를 찾고 있을까.’
미안함이 밀려올 때, 등원 전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이보다 엄마가 적응하는 데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다 그렇게 지나가요.”
그 말들을 떠올리며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 짧은 두 시간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어린이집 등원 셋째 날.
문 앞에서 아이가 내 손을 붙잡았다. 놓치지 않으려 힘을 준 아이의 작은 손은 선생님의 이끌림에 결국 풀려버렸다. 선생님의 품에서 발버둥 치며 울부짖는 아이의 애원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그만 바라보고, 돌아서야 해.’
스스로에게 수없이 주문을 걸었지만 발끝은 바닥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어린이집을 빠져나와 차에 타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두 시간 뒤면 다시 만날 텐데, 마치 아이를 버리고 가는 엄마가 된 듯 죄책감이 밀려왔다. 차마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어린이집 주변을 맴돌았다.
스무 시간 같은 두 시간이 흘렀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하자, 윗층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와다다다’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보고싶던 아이가 눈 앞에 나타났다.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내 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뒤이어 놀란 선생님이 헐레벌떡 내려오셨다.
겁이 많아 높은 곳도 잘 오르지 못하던 아이가 스스로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으면, 얼마나 낯설고 두려웠으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내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선생님, 우리 아이 오늘 퇴소할게요.”
퇴소를 결정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내 품에 꼭 안긴 채 금세 잠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아이를 지켜내는 걸까,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숨기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내 안의 두려움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 대한 반발이었다.
모든 아이가 같은 나이에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 불편했다.
울어도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아진다는 말—그 모든 말 속엔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는 명령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익숙함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적응’이라면, 나는 그때 잠시 멈춰 서기로 했다.
그 후로 아이와 세 해를 더 함께 보냈다.
나의 불안을 덜어내고, 아이에게 세상의 속도를 강요하지 않으니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부드럽게 흘러갔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 다르게 걸어도 충분하다는 믿음이 내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6살이 되어서야 다시 기관에 발을 들였고, 그때는 울음보다 웃음이 먼저였다.
아이를 세상에서 지켜내려던 마음 속엔, 사실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았던 내 욕심이 숨어 있었다. 내가 덜어내고 싶었던 건 공부나 경쟁이 아니라, ‘이 나이엔 이걸 해야 한다’는 세상의 시간표였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믿음이 아이보다 먼저,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숨결이 잠든 듯 고요해진 밤, 나는 다짐한다.
느리게, 그리고 충실히 살아내자고.
…그러다 다음날 저녁이 되면 또 외친다.
“얼른 밥 먹고 할 일 해!”
느리게 살겠다는 다짐은 또 이렇게 무너진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 스스로도 허탈한 웃음이 터진다.
매일 흔들리고 조급해져도, 결국엔 다시 우리만의 속도로 돌아온다.
덜어낸다는 건 멈추는 게 아니라, 세상이 정한 속도 대신 우리만의 호흡을 다시 찾는 일이다.
조금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그 리듬 속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일.
오늘도 그렇게, 우리는 호흡에 맞춰 천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