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할 즈음 창밖의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해져 있다.
희뿌연 매연 안개로 자욱한 도시의 불빛은 당장이라도 꺼질듯한 강물 위의 등불을 연상시킨다.
공항 의자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인천을 출발해 델리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늦은 저녁에 도착하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헐.. 근데 이게 웬걸...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의 공항은 국내 버스터미널보다 못한 수준이었고, 한국인은 커녕 외국인 여행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까만 얼굴에 부리부리하게 커다란 눈을 한 인도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큰 배낭을 멘 동양 여자에게로 쏠렸다.
너무 어수선해서 새벽 분주한 어시장에 온 듯한 어둑한 공항은 밖과 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길바닥에 버려진 기분이 들게 했다.
처음 낯선 땅에 발을 들인 20대 초보 여행자는 도저히 공항에서 하룻밤을 지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소변이 마려운 아이처럼 당황해서 절절매고 있는데, 기내에서 만난 한국인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여행객은 너랑 우리 팀밖에 없는 것 같다고... 혼자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리니 하루 같이 지내자며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나의 구세주. 천진난만하신 아주머니와 똑똑한 어린 아들, 김창완 씨를 닮은 아빠 아닌 피아니스트, 인도인 가이드 캠
네 명의 조금 이상한 조합을 한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밀려오는 먼지와 습한 더위가 확 몰려와 숨이 막혀왔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들며 인도란 나라에 와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 캠의 차를 구겨 타고 공항을 떠나 델리의 중심으로 향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차가 꽉 막혔다.
나의 구세주 역시 호텔을 예약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에 호텔이 보이면 차를 세웠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아주 큰 호텔인데도 이상하게 방이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오늘은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인도의 커플 역시 밸런타인데이를 챙기느라 1급 호텔부터 모텔까지 방이 남아있는 게 없다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시내 중심을 빙빙 돌며 호텔이란 호텔은 다 뒤졌다.
덕분에 델리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 구경을 하긴 했지만.. 인도의 연인들이 이렇게 열렬하게 밸런타인데이를 챙길 줄은 몰랐다.
그 후로도 한참을 더 이리저리 헤매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숙소를 잡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인도 초보 여행자로 공항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인크레더블 인디아>라는 문구가 써져있는 현수막이 한쪽 벽에 붙어있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여행하면서 수백 번도 넘게 그 말이 머리에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