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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밤은 20루피짜리 탈리를 먹고 나면, 딱히 할 게 없다.
현재의 빠하르 간즈처럼 술집이 있던 때도 아니어서 해가 지고 나면 여행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여행 중에 마시려고 아껴둔 소주팩을 미리 까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 밤은 지난 며칠과 다르게 발리우드라는 한 장르로 불리는 인도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인도를 다녀온 동생이 여행 중 인도 영화에 꽂혀 인도영화 ost를 밤낮으로 틀었었다.
지금은 인도 곳곳에 으리으리한 멀티플렉스가 많지만, 그때는 뭐... 뭄바이에 하나 오픈했다고 들었더랬다.
빠하르 간즈에는 다행히 낡고 오래된 영화관이 하나 있다.
10년 전인 그때에도 그 영화관은 참 낡고 볼품없어서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영화관인지 몰랐었다.
가까이에 임페리얼 시네마가 있는 것에 감사하며, 26루피 영화표를 끊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여행객인 우리에게 배려 차원인지 외국인 차별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2층 특별석을 내주길래,
"우리는 배낭여행자야~! 이런 호사(???)는 사치야!"라는 말도 안 되는 여행 초기의 허세로 특별석을 마다하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여행 막바지였다면 절대 그런 사양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우리나라에서 영화 간판을 직접 그리던 시대의 영화관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어두컴컴해서 내부가 눈에 들어오기 전에, 쾌쾌한 냄새가 코를 먼저 찔렀다.
좌석은 나무로 아주 정직하게 직각으로 만들어져 영화를 보는 3시간 내내 몸에 맞지 않는 코르셋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인터미션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픈 허리를 잠시라도 펴기 위해 상영관을 나왔는데 모든 시선이 나한테 쏠리는 게 느껴졌다.
상영 중에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여자는 나 혼자였던 것.
여자는 영화관 출입이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놀라움에 찬 눈초리로 쳐다봐서 당황스러웠다.
2부가 시작한 뒤 영상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영화 내 배경이 실내이건, 실외건, 날씨가 화창하건, 흐리건 계속해서 까만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그리고 가끔씩 정전이 된 것처럼 필름이 뚝 뚝 끊겼다. 클라이맥스에선 더 가관이었다.
사운드의 싱크가 어긋나서 주인공이 나쁜 놈들을 처단하기 위해 배를 가격하면 채찍 소리가 나고,
채찍으로 후려 칠 때는 주먹으로 배를 가격하는 듯 한 북소리가 났다.
사실 영화보다 더 볼만한 건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주인공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일인 양 소리를 지르며 온갖 비난과 함께 팝콘과 휴지가 날아다니더니,
영화가 중요한 장면에서 끊기자, 야유와 비난을 넘어서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스크린 쪽에서 하얀 빗줄기가 이리저리 흔들리길래 봤더니, 직원이 뒤늦게 온 손님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이다.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다 같이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온갖 손에 있던 쓰레기가 스크린 쪽으로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대고,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의 발리우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으면, 관객들이 난리를 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