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버이날이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약간 늦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이동하다가 횡단보도에서 카네이션 꽃 모양 브로치를 검은 정장 재킷 왼쪽에 단 여성을 보았다. 그 옆에는 동년배의 여성이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붉은 카네이션 꽃 모양의 브로치를 가슴에 단 여성이 활짝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옆의 여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횡단보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단 몇 초 동안이었을 텐데, 그 모습이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 저녁 내내 마음이 서늘했다.
왜 지금 아침에도 그 모습이 생각날까? 두 여성의 얼굴 표정에서 보인 감정의 대비가 너무나 선명했다. 검은 재킷 위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이던 붉은 카네이션 꽃 모양의 큰 브로치가 누가 보아도 ' 오늘이 어버이날이어서 받았구나 '생각하게 해주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무언가 이야기하는 그 여성 옆에 카디건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횡단보도를 바라보며 옆에서 걷던 그 여성의 모습은 왜인지 저녁 내내 마음에 남아 서늘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가족의 달이라고 한다. 가족 간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 있어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무언가 하는 것 같은 시기에 어린이가 없는 가정이나 어버이와 사이가 안 좋거나 보기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관계에서 아프고 복잡하고 힘든 감정으로 그래도 가족이니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난감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누군가 먼저 떠나거나 돌아가셔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그저 공공기관과 사무실이 많은 빌딩들 사이에 있는 횡단보도여서 회사 동료일까 생각을 했었다. 동료의 즐거움과 기쁨에 뭐라고 하기 어려워 묵묵히 들으며 나누기 어려운 감정들로 인해 복잡한 마음을 그저 무표정으로 가렸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른다. 그저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걸었을 수도 있고, 회사 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지, 그냥 평소에 덤덤한 표정을 짓는 사람인지 모른다. 내 마음이 그 카네이션 꽃에 반응해서 일어난 생각들과 감정들일 수 있다. 매해 어버이날이면 이른 아침에 연락을 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가 올해는 점심 전에 연락을 드렸다. 여행 중이시던 부모님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오후를 지나 왔다. 고등학생 아이도 짧은 톡을 보내고 말을 건네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왜 서늘한 마음이 남아있을까?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그 짧은 순간이 가족이란 어떤 관계일까 생각하게 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닐 때면 학교 활동으로 만들어오던 카네이션 꽃과 카드들, 중학교 들어서서 움직이는 그림으로 그려준 인사들, 용돈을 아껴서 늦은 저녁에 꽃집을 찾아 사오던 꽃들이 생각난다. 그 꽃들을 보면서 몇일동안 행복해하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고등학생이 되어 점점 더 간단하게 지나가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기념일들은 무언가 마음에 남는다. 이런 마음도 커가면서 비워야하는 마음일까?, 우리 부모님도 자식들이 커가면서 그런 마음을 느끼셨을까?, 내가 간단히 보내는 인사와 선물비는 어떤 마음으로 받으실까? 생각했다. 각자의 입장에서 다 다른 감정과 생각을 느끼는 건 당연한데, 왜 그 모습이 마음에 남아 이렇게 서늘해지는걸까? 나도 모르게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의 마음을 서늘하게 한 적이 있나? 아니면 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서늘해진걸까? 여러 모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또는 어떤 상황에서는 서늘한 어버이날일 수 있겠다 생각하니,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 여성이 무표정을 지었나 싶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 무표정은 그 여성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을 수 있다. 타인의 기쁨을 같이 들어주는 거, 또는 타인의 슬픔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저 들어주는 거, 그 옆자리에 있어주는 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스치며 살아가는지, 그 서늘한 마음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말해주면 좋겠다.
' 서늘한, 그런 마음 들 수 있어,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