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고통도 공짜가 아니에요”
얼마 전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나도 써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분은 웃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공짜는 없다’는 말은 흔히 어떤 이득을 쉽게 바라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뭔가 찜찜하고, 냉소적인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고통에 빗대어 들으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말은 마치 이렇게 들렸다.
“지금 네가 겪는 고통도 그냥 흘러가진 않을 거야.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
그 말이 쓰지만 향기로운 커피처럼 느껴졌다. 고통이 허무하지 않다고, 지금의 아픔이 나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공짜는 없다는 말이 이렇게 다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 그 자체로는 피하고 싶고 버겁지만, 돌이켜보면 그 고통을 지나며 유연해지거나,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단단해지고 성장하기도 한다. 고통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삶에 흔적을 남긴다. 세상에 공짜가 없어서 고통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었다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의 강인함을 느꼈다. 강인함에 대해서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강인함(psychological hardiness)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붙잡고,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려는 태도다. 강인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나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 강인함을 구성하는 것은 삶에 대한 통제감, 도전의식, 의미에 대한 감각이라고 한다.
첫째는 삶에 대한 통제감이다.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도전의식이다. 삶의 불확실성을 위협으로만 보지 않고,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셋째는 의미에 대한 감각이다. 고통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삶을 더 크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그분의 말에는 또 하나의 태도가 녹아 있었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다. 자기 효능감은 어려움을 앞에 두고도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기 믿음이다. 한두 번의 고통을 견디는 것도 어렵지만, 여러 번의 고통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반복의 경험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자신에게 말하게 된다.
“이것도 결국 지나갈 거야.”
“예전에도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해낼 수 있어.”
자기 효능감은 단지 자신감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험에서 쌓인 심리적 자산이다. 누군가는 고통을 반복해서 겪으며 점점 지쳐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간다. 그 확인이 쌓여 자신을 믿는 힘이 된다.
“이 고통도 공짜가 아니구나”라는 말은, 결국 삶이 아무 의미 없이 상처만을 주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이다. 고통은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기 보다는 내면 어딘가에 강인함이 자랄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 사이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희망이 솟아난다. 잘 지나갈거라는 해낼 거라는 자기 효능감이 거름이 되어 어느 날 문득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해줄 수 있다.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는 하기 어려운 말, 고통은 공짜가 아니야... 고통을 지나가야 할 수 있는 말.
그래서 그말을 하는 그 분을 바라보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한 겨울에도 봄의 새싹을 생각하며 삶의 에너지를 잘 보듬고 조금씩 키워가는 마음을 본 순간
산다는게 참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계절 만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