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는 어떻게 삶을 멈추게 하는가
나는 ‘하면 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진짜 절망은 대학 3학년, 취업의 문턱을 넘어서며 시작된 것 같다. 흥미가 없는 것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동기들을 보며 기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남들은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렸지만, 나는 그저 자소서 한 줄을 더 쓰는 게 죽기보다 싫어 지원서를 던지듯 아무 중소기업에나 몸을 맡겼다. 주변에서는 아까운 스펙이라며 만류했지만, 내게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거부감이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안의 ‘ADHD적 기질’이 본격적으로 인생의 궤도를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 대학 때까지는 그저 ‘공부’라는 정해진 과제만 수행하면 되었다. 하면 성적이 나오는 사람이었기에, 나 스스로도 내가 ‘하면 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회라는 무대에는 치명적인 변수가 있었다. 나는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진짜 문제는 회사에서 터졌다. 인수인계를 받는데 상대방의 말소리가 단 한 마디도 뇌에 머물지 않고 튕겨 나갔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의 지식은 내게 아무런 쓸모없는 소음일 뿐이었다. 옆에 앉은 동기 언니는 그 소음 속에서 무언가를 척척 해내는데, 못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결국 잘리다시피 회사를 나왔을 때, 내 자아상은 처참히 붕괴했다. ‘하면 된다’ 던 나는 어디로 가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낯선 나만 남은 것일까.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늘 극심한 기복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이해력이 빠른 아이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나를 영특하다 믿었지만 나는 그저 수학을 못 하는 중간쯤의 아이일 뿐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성적이 수직으로 상승하곤 했다. 반에서 1등을 하고, 15등에서 5등으로 뛰고, 수도권조차 어렵다던 성적을 반년 만에 서울권 여대로 바꿔놓았다. 대학교 1학년 때 국가장학금조차 못 받던 엉망인 학점은 4학년 때 4점대를 찍으며 겨우 평균을 맞췄다. 이 폭발적인 에너지가 꺼진 뒤에 찾아온 취업의 시기가 그래서 더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퇴사 이후의 우울은 나를 집어삼켰다. 당시 남자친구는 내 잠재력을 믿는다며 공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을 권유했고,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NCS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길의 자소서를 채우는 시간은 숨 막히는 고통이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취업 자체가 싫었던 내 뇌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그 무렵, 지하철역을 걷다 보면 기괴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가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부피만 차지하고 둥둥 떠다니는 ‘살덩이’처럼 느껴졌다.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에 무거운 유기물 덩어리만 남아 정처 없이 떠도는 기분. 나중에야 알았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뇌가 나를 분리해 버린 ‘이인증’의 한 형태였다는 것을.
사실 그때는 내가 ADHD일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저 TV 속 연예인처럼 시끄럽고 과잉행동을 하는 사람들만의 질병인 줄 알았으니까. 나는 그저 ‘하면 되지만 흥미가 없으면 죽어도 못 하는 유별난 사람’ 일뿐이라고 치부했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살덩이의 감각으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