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먹는다고, 다 낫는 건 아니다

‘정신의 암’과 ‘마음의 백내장’에 대하여

by 메리

내 우울의 서사를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이번엔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과 내가 직접 겪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조울증 2형을 진단받고 수년간 수많은 약을 먹어봤다. 흔히 조울증이라 하면 들뜨는 '조증'을 떠올리기 쉽지만, 2형은 지독한 우울 상태를 베이스로 아주 가끔 경조증이 혼합되는 양상에 가깝다. 나 역시 그 끝없는 저점 속에서 헤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은 효과가 없었고, 또 효과가 확실했다.


정신과 약에는 다른 약들과 달리 지독한 편견이 뒤따른다. 뇌를 망가뜨린다거나, 근거 없이 몸에 좋지 않다는 식의 막연한 거부감들 말이다. 어쩌면 일부분 맞는 말일지 모르나, 기분장애를 방치했을 때의 부작용 또한 치명적이다. 뇌 기능은 저하되고 기억력과 인지능력은 눈에 띄게 감퇴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항암제는 독하니까 먹지 말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와 상종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유독 정신과 약에 대해서는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거나 "우울은 사치"라는 말이 쉽게 오간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지독하게 우울해봤으면 좋겠다. 우리 언니 역시 내가 약을 먹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약은 몸에 해로운데 꼭 장기 복용을 해야 하느냐고 걱정 섞인 훈수를 뒀다. 그러면서 약에 의존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훗날 우리 언니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나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되돌려주었다. "언니, 공황 오면 의지로 한번 참아봐. 약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질환으로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이들은 가족, 혹은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무지한 선의는 때로 약보다 더 독하게 심장을 파고든다.


유독 정신의 아픔은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기분장애와 우울증의 가장 큰 부작용은 ‘자살’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의지만을 강조한다. 암에 걸린 사람에게는 그렇게나 관대하게 굴면서, '정신의 암'에는 그렇게 무지할 수가 없다. 나는 정신질환이 자가면역질환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할 자아가 자신을 혐오하고 공격하며, 심할 경우 파괴하는 지경까지 이르니 말이다.


내가 한창 조울증약을 배가 부르도록 먹었을 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손만 떨렸고 말은 어눌해졌으며, 여전히 매일 밤 울었다. 자랑스럽도록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누구나 탈모임을 알 정도로 3분의 1만 남았다. 몸무게는 6kg 정도 늘었고, 매일 배달 앱만 들여다보다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선생님은 증상을 약으로 치료하고자 했지만, 내 정신머리는 약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 아빌리파이라는 약도 전혀 효과를 느끼지 못했고 살만 쪄서 중단했다. 데파코트라는 약물은 탈모뿐 아니라 내 자랑이었던 피부를 트러블 덩어리로 만들었고 손발톱은 힘없이 휘어지게 했다. 이는 약의 부작용에 민감한 나의 개인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정신과 약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최소 용량만으로 삶이 나아지기도 하고, 나 같은 이는 최대한으로 먹어도 더욱 처참해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수많은 약이 아니라 아빌리파이 하나로도 효과를 어느 정도 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약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무작정 단약을 했다. (이 방식은 전혀 권유하고 싶지 않으니 개인적 경험으로만 참고하길 바란다.) 단약을 한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문제의 해답이 화학적 처방보다는 사고방식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큰언니가 "너는 달란트가 많은 사람이야"라고 칭찬해도,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라고 받아치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감 넘치던 애가 왜 이렇게 됐냐"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친구에게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니까"라는 말만 연신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지치료 책인 데이비드 번즈 박사의 <필링 그레이트>를 마주했고, 필사적으로 그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망령을 퇴치하고자 했다. 나도 모르게 찾아와 부정적 자아상을 선물하고 간 망령 말이다. 그 책을 통해 나는 세상을 시니컬하게 보는 게 아니라, 왜곡된 시야로 아주 좁고 혼탁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게 만무했다.


책 한 권 읽었다고 자아상이 곧바로 긍정적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병식을 인지하고 내 사고가 왜곡되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은 생긴다. 이후 2년 정도 삶을 살아내며 훈련 아닌 훈련을 했다. 물론 괴로움이 모두 치료되진 않았다. 환경적인 문제는 여전히 괴로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로소 이때 약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약이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사람들은 우울해 보이는 주변인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듯 뇌의 신경물질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주변에는 평생 약을 먹어도 달라지는 것 없이 학교 다니듯 병원만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건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병식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맑은 사고가 무엇인지, 지금 내 사고의 어떤 부분이 오염되었는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마음의 백내장'을 앓으며 감정에 휘둘려 살기 때문이다. 감기약은 증상을 치료해 주지만 면역력을 강화하진 않는다. 정신과 약도 그러하다. 환경과 기질에 의한 우울감으로 망가진 뇌의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환경과 기질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건 약이 아닌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 모두가 필요하다. 병원에 가는 것 자체도 변화의 의지이지만, 우리 삶의 진짜 면역력은 사물과 감정을 똑바로 보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다.


혹시 당신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나의 기록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우울이나 삶의 장애물에 대해 무책임한 뻔한 위로는 하고 싶지 않다. 구조를 들여다보고 덜 지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삶의 강스파이크에 덜 아프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