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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내 Dec 28. 2023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더 소중했던 삶

알고보니 '엄마'에겐 '엄마만의 무대'가 필요했던 거야.

 아침마다 몸을 일으켜 차가운 수영장에 나의 몸을 던진다. 아직도 락스 향이 짙은 수영장의 차디찬 물에 몸을 담군 직후는 적응이 안 된다. 온몬에 닭살이 올라오는 것도 잠시 함께 수영하는 이모님들과 인사 후, 자유형으로 몸의 열을 끌어올린다. 아침잠이 많은 난, 반쯤 감긴 눈으로 애써 퉁퉁부은 눈을 떠가며 허우적거린다. 펭귄이 처음 수영을 배우면 나와 같은 모습일까? 하지만, 우리 엄마는 수영장만 가면 해맑은 아이처럼 신난 소녀로 변한다. 무뚝뚝한 우리 엄마의 얼굴에서 이렇게나 해맑은 미소를 본적이 있던가?


 '접영 에이스'라는 타이틀을 선보이며 선두주자로 두 팔의 날개짓을 뻗어가며 저멀리 앞서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니, 이제야 '나 좀 살 것 같아'라고 포효하는 듯하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사람의 얼굴엔 저런 표정이 나오는구나 싶어진다. 난 엄마처럼 저렇게 해맑게 신났던 표정을 지은 적이 언제였던가? 


 어깨 아파서 못할 것 같다며 두려워하던 우리 엄마가 막상 저렇게 날개짓하며 물 속에서 날라다니는 모습이 낯설다. 뭐랄까? 물 속이 아니라, 엄마에겐 높은 푸른 하늘의 한가운데를 자유롭게 날고있는 '한마리의 새'같았다. 그동안 '한 소녀'가 '엄마'로 살아오느라 억눌려왔을 삶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평생 난 '나의 무대'에만 초점이 있었지, '엄마의 무대'를 만들어드리는 것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그저 자식의 물공포증 극복을 위해 시작한 수영 속에서, 엄마의 뒷모습에 내가 그동안 '한 소녀의 삶'의 발목을 잡아온 것 같아 죄책감도 들었다. 


 알고보니 평생토록 '엄마'에겐 '엄마만의 취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알고보니 평생토록 '엄마'에겐 '엄마만의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린 나이 20대 초반,,지금의 내 나이에 비슷하게 결혼하여 나를 뱃속에 안고, 13년 다닌 직장에게 버림받고, 30대를 3남매 독박육아로 아등바등 감당하며 견뎌오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 이후 평생의 무대가 '주방'이었을 텐데,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수영'이란 우연한 취미 덕분에 엄마에게도 새로운 무대가 생긴 것 같아 속상하면서도 감사하고 벅차다.


 나였다면? 나라면 과연 이 모든 과정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 엄마란 사람의 삶의 무대에 내가 그간 너무나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참 나쁘다. 나 자신. 그런 엄마의 품속에서 곱디 곱게 자란 난. 과연 그 보답을 하고 살아왔던가? ‘자식의 무대’를 위해 ‘자신의 무대’를 기꺼이 포기할 만큼, 크나큰 삶의 희생을 견뎌온 엄마에게 난 과연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엄마의 희생과 더불어, 엄마의 표정 속에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것을 하고 살아가면, 평생토록 젊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인생은 우연한 기회로 나의 무대를 찾아가는 여정들의 연속이 아닐까? 나에게 찰떡같이 잘 맞는 분야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 우리들의 서사가 아닐까 싶어진다. 수영의 과정 속에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뒷모습. 덕분에 엄마의 무대에 대해서, 동시에 내가 살아가야 하는 여정에 대해서 곱십고 생각하게 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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