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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싱키맘 May 09. 2023

2023년 핀란드 총선 결과를 보며

4월 2일 핀란드 총선에서 우파와 극우정당이 득세한 것을 두고 한국언론에서는 최연소 총리의 광란의 파티 탓이라는 보도만 쏟아내고 있는데, 한국언론의 한계와 현주소를 다시 한번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듯해 씁쓸하다. 


어젯밤 개표를 보면서 핀란드 언론에서조차 이례적이라며 다룬 것이 전세계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이었다. 유럽 내 언론인들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저 멀리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라고 언급하며 전세계에서 70여명의 언론인들이 직접 헬싱키로 달려와 취재하고 있다고 ro하는데, 혹시나 하고 귀기울여 보았지만 역시나? 한국언론에 대한 언급은 없더라. 


한마디로 이번 총선 참패는 핀란드 중앙당, 녹색당, 좌파동맹이지, 마린 총리가 이끈 사민당이 아니다. 어젯밤 선거개표가 50% 이상 진행될 즈음 정확도가 높기로 정평이 난 YLE 공영방송 출구조사에서 각 정당 대표들의 표정들을 보았다면 저런 무성의한 퍼다나르기식 자극적 기사는 차마 쓰지 못했을 것이다. 


Marin 총리는 끝까지 평정심 잃지 않은 미소를 머금은 당당한 표정이었고, 재무장관인 중앙당 Saarikko 당대표는 이도저도 아닌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어정쩡한 위로의 말을 지지자들에게 건넸고, 녹색당 Ohisalo 당대표는 말그대로 뭐 씹은 듯한 굳은 표정으로 참패 인정, 교육부장관이자 좌파동맹 Andersson 당대표는 심지어 욕까지 했다^^;;


그리고 2019년 당시 지역별/정당별/후보자별 득표상황과 이번 선거결과를 나타낸 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것은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녹색당 전 당대표이자 현 외교장관으로 핀란드 나토 가입의 일등 공신인 차기 대선 잠룡 Haavisto 장관도 인터뷰에서 향후 대선에 미칠 파장을 예감하는 듯 굳은 표정으로 소속당의 참패를 인정하더라. 


2019년에 총선 대비 가장 많은 의석수를 잃은 건 중앙당 8석, 녹색당 7석, 좌파동맹 5석이다. 마린 총리의 사민당은 오히려 3석를 추가 획득하며 선전하였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그러면 이 총선에 참패한 저 3개 정당의 20석 의석들이 어디로 갔는가를 보면 이번 핀란드 선거결과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표에 보다시피 2019년 당시 지역별로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정당과 2023년 현재의 상황을 보라. 2019년에는 핀란드 중북부 지역이 모두 녹색(중앙당)이었다. 그런데, 그 지역이 2023년에는 모두 하늘색(핀인당)으로 바뀌어있다. 중앙당의 참패는 정치의 극단적인 양극화의 상징이요, 녹색당의 참패는 기후위기정책이 팍팍한 민생경제에 밀려났다는 뜻이리라. 또한 좌파동맹의 참패는 나토 가입을 대놓고 반대한 것에 대한 안보불안심리의 응징이리라. 

또한 극우 핀인당의 집권을 우려한 나머지 녹색당과 좌파동맹의 유권자들이 사민당으로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선거를 ’전쟁 선거’라 했던 핀란드 전설적 언론인의 말이 떠오른다. 여기에 나는 한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나토 선거’라고. 


실제로 9개 대표정당 중 유일하게 나토가입 반대를 표방했던 것은 좌파동맹인데, 이를 주장했던 7명의 좌파동맹 현역 국회위원들 모두 의회 재진입에 실패하고 고배를 마셨다. 본인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나토가입 반대가 고배의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나토가입은 핀란드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이고, 게다가 드라마틱하게도 마침 선거날 이틀전 튀르키예 국회에서 스웨덴을 제외한 핀란드만의 나토가입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이다!


핀란드 언론에서는 오히려 46석으로 2위를 차지하고, 2019년보다 7배 이상 더많은 개인득표를 한 극우 핀인당 Purra 당대표를 선거의 여왕으로 치켜세우는 분위기다. 코로나다 전쟁이다 미중간 패권경쟁이다 복잡하게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틈바구니 속에 그걸 쫓아가려니 골치도 아프고, 살기도 힘든 판국에 Purra 그녀의 메세지는 참으로 심플하고 명료했다. 아무리 어떠한 합리적인 공격을 해와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직 핀란드인의, 핀란드인에 의한, 핀란드인을 위한 정치만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단, 무엇을 어떻게가 빠져있어 그게 문제인 듯한데, 핀란드인들 20% 눈에는 또 그게 안보이는 듯^^;).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오랜 기간 야당으로 고배를 마셔왔던, 이번에 10개 의석을 추가 획득하며 1위를 차지한 국민연합당의 승리는 코로나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과 그로 인한 경제난으로 인한 표심이동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또한, 선거토론회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인데, 젊은 당대표 언냐들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국민연합당 중년의 Orpo 당대표 아재를 내가 보기에도 무안할 정도로 느우~무 매몰차게 몰아세우는 것 같긴 하더라. ”뻬떼리, 너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거야. 지난번 의회에서는 그렇게 말안하더니 지금은 또 딴소리하고 있잖아. 그건 사실이 아냐!!” 직역하면 이런 정도 느낌? 여긴 존댓말 안쓰니 야자에 이름도 막부르고 ^^;;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는 우파 당대표 아재를 보며 얼마나 많은 핀란드 아재 유권자들이 두고보자~했겠는가. 표심 중에 제일 힘이 쎄다는 소위 동정표도 작동하지 않았을까 싶더라는.


이번 선거에서 3만표 이상의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정치인 TOP 3도 마린 총리를 포함한 모두 여성후보들이다. 정작 당을 승리로 이끈 국민연합당 Orpo 당대표는 약 만7천표를 얻어 9위에 머물렀다. 


원인이야 어떻든 총선에서 승리하고 총리당을 이끌어 냈다고는 하나, 향후 우파, 부르주아, 자본가당인 국민연합당이 가야할 길은 그리 녹녹치만은 않아보인다. 연정을 꾸려야하는 히말라야 같은 험준한 산이 바로 코앞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제 개표 방송에 참석한 어느 정치학 교수는 연정을 꾸리는데 길게는 반년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평가했다. 


1위인 우파 국민연합당이 EU탈퇴, 이민자반대,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 핀란드인 최우선이라는 막무가내 극우당인 2위 핀인당과 손 잡을 것인가? 아니면 그나마 말은 통하고 협상의 여지는 있어 보이는 3위 사민당과 손잡을 것인가? 이럴 경우 파란 우파당과 빨간 좌파당이 연정하는 시니푸나(Sinipuna 청홍색) 알록달록 내각이 꾸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 삶이 힘들고 팍팍해질수록 우경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니, 역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우리 선조님들의 옛말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긋남이 없는 듯하다. 


https://www.hs.fi/politiikka/art-20000094895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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