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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싱키맘 Mar 21. 2022

핀란드의 안중근 #4

@@ 피로 물든 에우겐 샤우만의 셔츠 @@


핀란드 국립박물관은 매주 금요일 오후 4~6시까지 무료입장인데, 레오가 11년째 활동하고 있는 헬싱키대성당 소년합창단 성탄절 공연까지 시간이 남아 박물관에 들렀다. 핀란드 이야기(Story of Finland)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게끔 전시되어있는 '피로 물든 에우겐 샤우만의 셔츠'. 박물관에 가면 제일 먼저 가서 한참을 머물며 바라보는 곳이기도 한데..


핀란드인들은 자신들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왜하필 저 피로 물든 셔츠를 방문객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했을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일까.


레오아빠는 에우겐 샤우만을 ’핀란드의 안중근이지’라고 했다.


1904년 6월 16일 핀란드 민족주의자이자 스웨덴계 귀족이었던 에우겐 샤우만(Eugen Shauman 1875-1904)은 당시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핀란드 입장에서는 독재자(핀어로 diktaattori라고 독재자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다)인 차르 니콜라이 2세로부터 임명된 니콜라이 보브리코프(1839-1904) 핀란드 총독에게 세 발의 총을 쏜 후 스스로에게 두 발을 쏘아 자살했다. 샤우만은 즉사했고 보브리코프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당시 보브리코프의 암살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고, 그로 인해 차르 통치에 반대하는 저항 세력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1904년 하지절을 앞둔 6월 16일, 백야의 하늘 아래서 샤우만이 헬싱키의 심장 핀란드 원로원 청사에서 보브리코프의 가슴에 총탄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1917년 핀란드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못했을꺼라는 주장도 있는 것을 보면 29살 젊은 청년이 당긴 세 발의 총성의 역사적 의미는 짐작이 갈만하다 하겠다. 러시아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로부터 5년 뒤 1909년 당시 31살의 안중근 열사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후회'의 사전적 의미가 ’이전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침’이라고 되어있다.


얼마전 음식을 하다 살짝 베인 곳(손톱과 살의 경계)에 염증이 자리 잡았는데, 방심하는 사이 손가락 절반이 퉁퉁 붓고 작열감이 매우 심각했음에도 무심히 버티다 이틀 내내 잠도 못자고 고생한 후에야 동네보건소 가서 마취도 없이 그 자리에서 시술해서 고름을 짜냈다. 생살을 칼로 찢는 의사를 보니 의사는 천직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 쏙 심장에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듯한 아픔에도, 한편으로는 노오랗고 허멀건 고름이 쭉 나오는 것을 보며 아 이제는 살았구나..싶은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야만 했다. 1주일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죽음'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


어제 저녁 남편과 레오 합창단 공연 보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날뻔했다. 버스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충돌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맨뒷자리에서 앞좌석이 없는 통로자리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있던 남학생이 가운데 통로로 쭉 미끄러져 뒷문 앞까지 나뒹굴어 떨어져 고꾸라져 박혔다. 젋은 학생이라 다행히 부러지거나 터진 곳은 없었는데 타박상이 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이드신 분이셨다면 뼈가 부러지고도 남았을 급정거였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죽음이란 것이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죽음은 밤늦은 퇴근길 가로등에 비치는 그림자처럼 다가온다고 하더니..


오래전 한국에서 엄청 비가 내리는 여름 날 친정엄마와 함께 외삼촌댁 가는 길이었는데 고속버스가 갑자기 끼어드는 화물차를 피하려다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교통사고 났을 때 그때의 공포가 빛의 속도로 엄습해왔다.


기억이란… 양자들의 무자비한 얽힘같다. 느닷없이 떠올라 온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도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처럼 속수무책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다시는 찾을 길 없어 길을 잃고 헤매이기도 한다..


작성일 : 2021년 12월 18일 

사진 : 핀란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피로 물론 에우겐 샤우만의 셔츠 by 달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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