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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싱키맘 Mar 21. 2022

핀란드 가을자연을 흠뻑 적시다! #5

국민작가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생가


헬싱키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나는 스스로를 헬싱키 촌사람이라 생각하는데, 2005년 이주하자마자 낯선 땅에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임신/출산/육아라는 일생일대 대반전의 경이로운 체험에 이어 운이 좋아(?) 외노자로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고, 한글학교 봉사 10년에 평통활동 5년째, 그야말로 집-회사-주말 한글학교봉사-휴가를 모두 반납한 평통행사참여 라는 삶의 틀 안에서의 15년을, 오로지 헬싱키라는 공간 안에서만 옹골지게도 살아왔다. 그 중 헬싱키를 벗어나게 되었던 유일한 기회란 건 그러고보니 평통행사 참석하러 비행기 타고 외국에 가는 거랑 한국방문이나 유럽지역 내 친지방문이 전부였던 것 같다. 이마저도 몇 년전부터는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ing)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상당히 수치스럽고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더더욱 비행은 가능하면 삼가는 방향으로 삶의 행로가 펼쳐지지 않을까한다. 16년 이상을 핀란드에 살았어도 헬싱키를 벗어나 핀란드 국내 다른 지역을 방문한 것은 겨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물론 우리집이 자동차 프리존인 이유도 크게 한몫) 난 헬싱키 촌사람일만두~ 하다.  


끙끙대던 시험들을 모두 끝내 놓고 이번엔 작정하고 남편에게 카렌트를 종용 지인댁 별장 찬스를 요구했다. 우리마저 차를 몰면 지구는 누가 지키냐고 마른 농(弄)을 던지는 남편. 억지춘향으로 차를 빌려 헬싱키 시내를 벗어나자 이내 광활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지구를 지키는 생각일랑은 잠시 접어둔 채 이내 우리는 20여년 전 서울에서 알콩달콩 데이트하던 20대 중반의 풋풋했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더랬지. 그렇게 절절하던..  푸훗:)



헬싱키에서 북서쪽(80km)에 위치한 빠이까린 또르빠(Paikkarin torppa)는 깔레발라를 집대성한 핀란드 문헌학자이자 의사였던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1802-1884)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이다.


지금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국경을 맞대고 나눠져있는 까르얄라(Karjala)지방에 구전되어 내려오던 민담들을 사진 속에 얌전하게 앉아계신 엘리아스님께서 오롯이 열정을 불살라 1828년부터 수집하고 기록하여 엮은 책이 핀란드인들이 사랑하는 대서사시 깔레발라(Kalevala).


작가 톨킨은 18세에 깔레발라를 핀란드어로 읽고싶어 핀란드어를 배웠고, 실제로 반지의 제왕의 많은 아이디어는 핀란드어와 깔레발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나도 깔레발라를 핀란드어로 읽으면 반지의 제왕 네번째 이야기 정도는 쓸 수 있게 되는건가? ^^


당시 19세기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는데, 깔레발라의 등장은 잠자고 있던 핀란드인들의 민족정기과 독립정신을 흔들어 깨우며 민중운동을 고취시켰고,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음악미술예술분야까지 확장성 넘치게 영향을 미쳐 1917년 마침내 독립에 이르게 되었다. 


깔레발라는 일리아드, 니벨룽겐의 노래와 롤랑의 노래와 함께 세계 4대 서사시 중 하나라고.


보툼하고 넉넉한 구릉을 배경으로 확트인 호수를 마주하고 있는 엘리아스 뢴로트의 어린시절 생가에 서서  호수 위로 넓게 퍼져 낮게 드리워진 구름 저 너머에 비춰떨어지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가을바람을 타고 핀란디아가 들려오는 듯했다.


사진 속 지붕만 땅위로 빼꼼히 올라와있는 저 쌍둥이목조건물은 엘리아스 뢴로트 생가 바로 앞에 있던 겨우내 감자와 식량을 저장해두었던 핀란드식 노천냉장고~


숲으로 들어가 보송보송 이끼들 사이로 매직아이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는 노오란 꾀꼬리버섯과 깔때기뿔나팔버섯을 한가득 따고 나니 어느새 사우나 타임. 


드아~ 세상에 존재할 법한 온갖 여유로움은 다 부리며 잘 달궈진 전통식 사우나에서 땀을 충분히 뺀 후 차가운 가을호수 속으로 그냥 풍덩~


덧. 친절하신 별장 주인님께서 헬싱키에서 온 방문객들을 위해 호수 가장자리로 최대한 크게 돌며 직접 노를 저어 나룻배도 처언천히 태워주셨다.


작성일 : 2021년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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