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핀란드어 통역사 이야기
십년 가까이 진로 고민을 하다 40대 중반에 마침내 진로를 변경하기로 마음 먹고,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꿈꾸었던 그토록 하고 싶었던 통역사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1997년 대학 4학년때 IMF가 터졌고, 언감생심 취직할 생각조차 아예 접고 졸업과 동시에 짐을 싸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 부모님 눈치밥 먹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1년만에 다시 짐을 싸 엄마가 쥐어 준 50만원 손에 들고 무작정 상경, 바로 취직할 수 있는 작은 회사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떠밀리다시피 한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적성이나 진로에 대한 생각은 당시 상황에서는 사치 그 자체였다. 소위 구복원수(口腹寃讐)…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해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일을 하면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온통 열정을 쏟아부으며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 그전까지 이런 거 어디서 들어본 적도, 스스로 생각해본 적도,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밤 12시까지 야자(당시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밤늦게까지 '야간 자습'을 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저 단어가 참 괴기스럽고, 비인권적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저런 적도 있었구나… 그래도 자정이 넘은 시각 세상 고요한 동네 골목길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귀가할 때 허공을 가로지르던 맑고 투명했던 밤공기는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뭇튼 야자하고 쉬는 시간 10분 쪼개서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의 정석 문제 하나 더 풀어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만 가면 그게 내 할 도리 다하는 거라는 말도 안되는 기괴한 프레임에 싸여 10대를 고스란히 날려버렸으니… 그 반작용, 부작용(?), 보상심리로 대학 4년 내내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불하면서 다시 유치원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천진난만하게 놀기는 실컷 놀았다.
2021년 핀란드에서 통역사 자격증 취득 후, 통역일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가장 심장 뛰는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양국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가다운 전문가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최근 통역했던 인터뷰들이 날카롭고, 글발 좋은 기자 님의 손끝에서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핀란드 전문가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통역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거나 때로는 미소가 번지기도 하는데. 이번 인터뷰에서도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관련 아이들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예로 '알고리즘' 같은 경우, "다양한 맛의 까르끼가 병에 한가득 담겨있는데, 네가 좋아하는 맛을 꺼냈더니 다른 맛의 까르끼들도 그 맛으로 변해가는 거랑 비슷한 거야."라고 설명하신다는 거다. 와~! 참으로 신선하고 창의적인 비유다. 알고리즘을 까르끼에 비유해 설명하다니!!
핀란드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까르끼를 너무 좋아한다. 까르끼가 세상의 전부인 마냥 까르끼에 집착하고, 신주단지처럼 숨겨놓고 몰래 꺼내먹기도 한다. 아이들이 까르끼를 너무 많이 먹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부모님들은 '까르끼의 날'을 정해 그날 정해진 양만큼만 먹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핀란드 지인과 함께 클래식콘서트에 갔었는데, 음악을 감상하면서 그 고요한 와중에 가방에서 본인 최애 까르끼를 한 개씩 꺼내 오물오물하시더라는!: 그 분 참 행복해 보이셨다:) 핀란드인의 소울푸드를 꼽으라면 단연 까르끼? 하하하
신록이 푸르름을 마구 뽐내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사알짝 쌀랑했던 늦봄의 이른 아침, 헬싱키 작은 기차역 주차장에서 만나 핀란드 아동복지연맹 빌레 강사 님의 차량으로 약 1시간 떨어진 포르나이넨 학교로 셋이서 함께 이동했었던 게 엊그게 같은데, 어느새 헬싱키에는 가을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핀란드어 Karkki 까르끼는, 딱딱하거나 말랑말랑하거나 부드러운 모든 종류의 달콤한 초콜릿이나 사탕, 젤리 등을 지칭한다. 맛도 색깔도 형형색색 얼마나 다양한지. 특히나 젤리를 엄청나게 애정하시는데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처럼 온갖 종류의 젤리로 가득~찬 까르끼 상점이 따로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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