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포르노그라피의 차이
바바라(Barbara, 본명 Monique Andrée Serf, 1930~1997)는 프랑스로 망명한 유태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치는 프랑스를 점령했고, 가족은 2차 대전 기간 독일군으로부터 숨어 겨우 살아야 했다.
전쟁 직후 바바라가 노래하는 것을 이웃집 음악교사가 듣고 그녀에게 음악공부를 권했다. 그것을 계기로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결국 음악학교인 Ecole Supérieure de Musique까지 합격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사계절의 샘(La Fontaine des Quatre Saisons)'이라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에디트 피아프와 마찬가지로, 바바라 그녀가 위대한 싱어송라이터가 된 원동력은 어린 시절 전쟁과 가난으로 입은 상처였다. 예술가들 상당수가 자기 상처를 뜯어먹고 자기 상처를 내보이는 것으로 먹고 산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내 생각에, 그건 포르노와 예술의 차이와도 흡사하다. 자기 상처를 날것으로 들이밀면, 그건 가장 내밀하고 감춰야 할 곳까지 다 드러내는 포르노그라피와 바를 바 없다. 반면 자기 상처를 암호화(encrypting?) 해서 보여주되 (혹은 표현하되) 자신이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을 관객이나 독자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그건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조르주 무스타키(그 역시 이집트-이탈리아 국적 부모 사이에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복잡한 혈통)의 노래를 링크했다. 그걸 보고 나는 한 동안 잊고 있던 바바라를 기억했다. 조르쥬 무스타키와 바바라가 함께 불렀던 La dame brune이라는 노래 덕분이다.
바바라는 언제나 검은색 의상과 짧게 자른 머리, 강해 보이는 메이컵으로 자기감정을 꽁꽁 싸맨 척하고 슬쩍슬쩍 자기감정을 드러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상처 나서 너덜너덜해진 몸을 서로 들이대며 자기가 얼마나 피를 흘리고 있는지 얼마나 아픈지 알아달라고 울어대는 아기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렇다고.
나는 이렇게 구식 노래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내가 아픈 걸 알아달라고 남들 앞에서 울어대지 않아도 될 만큼 늙어서 다행이라고.
2020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