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란 건 그저 환영일지도

각기서로 다른 인식체계를 가지고 함께 산다는 것

by 이연수
자외선 대역에서 본 꽃봉오리


인간이 타인과 공감한다는 건 기적이에요.


사람들은 모두 달라요. 우리가 갖고 있는 감각기관의 감도도 모두 다르고, 우리의 뇌는 또다시 그 감각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각기 다 다르게 처리해요. 마치 각기 다른 주파수로 라디오를 듣고 각기 다른 광원 아래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아요.


서로 다른 주파수를 듣고 서로 다른 파장을 보는 사람들끼리는 그래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해요. 내가 보는 것과 상대방이 보는 게 다르면 얻는 정보는 물론 감정도 달라지거든요. 끊임없이 상대방이 본 것과 들은 것을 듣고 상대방과 자신의 시차를 보정해야 해요.


예를 들어 나는 가시광선으로 사물을 보는데 상대방은 적외선 카메라로 사물을 본다고 생각해 봐요. 내가 밝게 느끼는 부분이 상대방에겐 의외로 어둡게 보이는 식으로, 이용하는 파장에 따라 서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우리가 흔히 보는 적외선 사진의 색깔은 컴퓨터가 임의로 색을 입힌 것이에요. 인간이 실제 적외선을 볼 수 있다 해도 뇌에서 각 파장에 따라 어떻게 색을 인식할 것인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가시광선을 보는 사람과 적외선을 보는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는 서로 완전히 다를 거예요. 그리고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생각과 다른 느낌을 갖게 되겠죠.


그 다양성이 좋은 걸 수도 있어요.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제한돼 있는데, 상대방이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이야기해 준다면요.


인간들이 다 비슷한 것 같다지만, 꽃이나 과일, 아름다운 동물, 아가의 옹알이처럼 우리 뇌가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설계된 것 이외 모든 것들엔 다 각자 다른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살면서 경험한 게 다르고, 배운 게 다르고, 기억한 게 다르니까요. 살아온 문화는 물론이고요.


그러니 인간 뇌가 '아름답다'라고 합의하기로 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새로운 사물과 새로운 사건들에 대해서는 세상사람들이 각자 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 세상 일들에 대해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합의하나요? 내가 붉은 꽃을 보고, 그 형태와 색깔을 보고 느낀 감정을 어떻게 그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있나요? 상대방이 그 붉은색을 붉은색으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게다가 붉은색을 보고 느끼는 따스함이나 강렬함은 또 어떤가요? 각 RGB값이나 팬톤번호에 따라 느끼는 각각의 감정을 수치화하기라도 해야 하나요? 형태가 주는 감정은 또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아직 감정을 수치화해 본 적이 없어요. 감정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아무리 간단하게 만들려 해도 50 x 50 정도 규모의 행렬은 써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타인의 행렬값을 보고 계산이라도 해야 내 감정을 알 수 있는 걸까요?


그러니 사랑이나 우정이 자라나면서 공유한 시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에겐 어떤 사물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기억과 감정을 제대로 공유할 방법이 없어요. 아무리 똑같아 보이는 경험이라도, 그 경험에서 얻은 감정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 다르니까요.


어릴 때부터 난 생각해 왔어요. 미술, 문학, 영화와 같은 예술은 바로 그런 개개인마다 공유한 기억과 감정에서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단순화시키는 거라고요. 일종의 기호화 작업이죠. 사실 우리의 뇌는 모든 종류의 기호화로 꽉 차 있어요.


내가 말하는 기호화라는 건 일대일로 대응되는 단순한 상징이나 기표(signifiant)들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세잔의 그림을 보고 과거에 내가 느꼈던 것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다르듯, 당신이 하는 생각이 나와 절대 같을 수 없듯,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너무나 변수가 많아서 우리가 절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사랑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흔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우리의 뇌는 각기 다 달리 인식해요. 그저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보니 같은 것을 생각하겠지, 하고 '추정'하거나, 혹은 필요에 따라 '간주'해요.


우리 모두는 꼭 서로 호환되지 않는 컴퓨터들 같아요. 절대 상대방 마음속에 들어가서 상대방 마음에 저장된 그 이미지와 그 감정을 내 뇌에 로딩할 수 없거든요. 심지어 시뮬레이션도 안 돼요. 나 이연수라는 한 개인이 붉은 협죽도를 보고 기억하거나 연상하는 그 수많은 정보를 당신이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대화는 그래서 자기기만이에요.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1%만 서로 같아도 우리는 서로 소통한다고 착각하거든요. 그러나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 1%만 맞는 사람도 정말 찾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가족도 혈연도 아니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거나 혹은 그럴 계획도 없는 사이에 서로 강렬하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그저 착각, 혹은 환영일 뿐이에요.


어쩌면 기적일 수도 있고요.


2020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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