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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May 10. 2018

“싫어, 안돼”를 가르치는 어른

6. 낯선 사람의 친절

  어릴 적 부모님은 "어른에게는 먼저 인사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어른이라도 틀린 말을 하거나 잘못된 요구를 한다면 거절해도 된다고, 싫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세대의 성장과정은 상냥함이 미덕이고 어린이는 어른에게 늘 예의 바른말과 행동을 해야 가정교육 잘 받은 아이가 되므로 부모 욕을 안 먹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낯선 어른이 이유 없이 말을 걸면 경계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강요받아도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라고 가르치는 시대다.


  율이가 어린이집 입학 첫해이던 세 살 무렵 엄마, 아빠 외에는 정확한 단어 구사도 어렵던 시절인데 어린이집에서는 "싫어요."와 "안돼요."를 가르쳤다.

  아동 성범죄와 유괴 문제가 사회적으로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1차 예방의 수단으로 아이의 방어를 강화하는 것이 이런 교육의 목적이다.

  그래서 율이는 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부터 "싫어." "안돼."만은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했다.



  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다 보니 등하원길이나 산책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가와 "아이고, 귀엽다." 하거나 "안녕?"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율이는 낯선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단호하게 "싫어!" "안돼!"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율이는 악을 쓰며 내 뒤로 숨었다.

  시장에 갔다가 아이를 귀여워하는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빵을 주려고 해도 율이는 기겁하며 "싫어요!" "안돼요!"라고 했다. 역시 어린이집에서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으면 안 된다고 교육해서인 듯하다.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한편으로는 아이를 예뻐해 주는 이웃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늘 좋은 어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갔는데 술취한 할아버지가 율이를 보고는 "아이고, 예쁘다."라며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놀라 "율아, 엄마한테 와."라고 소리 지르며 아이를 안았고 아이도 싫다며 울었다. 그런데도 술취한 할아버지는 "내 손주 같아서 예뻐서 그런다."며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 아이 손에 억지로 쥐여줬다. 나도 남편도 돈을 빼앗아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돌려줬지만 성격상 예의 바른 우리는 단호히 말하지 못해선지 그 노인은 약 5분가량을 따라다니며 돈을 주려고 했다.


  물론 우리를 해코지할 마음이 없던 것은 분명했고 이전 세대에서는 그런 무례한 행동조차 아이를 귀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이의 의사보다 어른의 의사가 더 존중받는 시대였으므로 할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불쾌했던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왜 아이에게 불친절을 가르쳐야 하는지, 호의를 믿고 따른 아이들을 사회와 공권력은 지켜주지 못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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