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향 May 12. 2018

발달이 느린 아이

7.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해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참여수업이 있었다. 약 30분 동안 아이와 엄마가 함께 미술활동을 함으로써 평소 아이의 어린이집생활이 어떤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율이는 생일이 10월30일이라 반 친구들에 비해 발달이 많이 느린 편이다. 가장 큰 아이들과 비교하면 키와 몸무게가 3분의2가량밖에 안되고 언어발달은 거의 아기 수준이다. 반 친구들이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서 자동차 놀이를 했어요." "친구와 다퉈서 선생님께 혼났어요." 등을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동안 우리 아이는 아직도 "싫어요." "안돼요." 정도의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늘 밝은 모습을 보였으므로 걱정하지 않고 지냈는데 어린이집 행사에서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율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데 익숙했고 마치 경쟁에서 밀린 아이처럼 주눅 들어 있었다.


  색색깔 물감이 있는 팔레트를 책상 가운데 놓고 자른 채소로 도장찍기를 하는데 다른 집 아이들은 서로 좋아하는 색을 찍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서 해야지."라고 말하며 타일렀다.

  그런데 율이는 혼자서 물감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손을 붙잡고 "엄마랑 같이 해보자." 하면 그제서야 내 손에 의지해 물감을 찍었다.


  그리고 미술활동이 끝나 함께 손을 씻고 나오는데 느닷없이 율이가 자기 책가방을 메고 와서는 "엄마, 집에 가자!"라며 울먹이는 것이다.

  "아직 어린이집 끝난 시간 아니야."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엉엉 우는 율이가 어리둥절했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공원으로 야외활동 갈 시간인데 율이는 내 품에 안겨 한 시간가량을 울었다. 공원을 따라가 미끄럼틀도 태워보고 안아서 달래도 봤지만 집에 가고 싶다며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아이가 답답하고 야속했다.


  요즘 며칠 율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떼를 써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이는 나름대로 힘든 사회생활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다.


  어른도 힘든 단체생활이 30개월짜리 아이에게 얼마나 버거웠을까.


  아이의 친구들은 선생님을 차지하고 싶어서 "숨바꼭질 해주세요." "그네 밀어주세요."라는 요구도 하며 재밌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사이 혼자 울고 있는 율이가 상상돼 미칠 것 같았다.

  이렇게 어리고 약한 너를 아직은 어린이집에 보내서는 안되는 거였나. 나 자신이 너무나 싫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싫어, 안돼”를 가르치는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