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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May 04. 2018

낙태수술 금지에 대한 생각

5. 여성 인권

  '혹시 임신했어?'


  이른 새벽 5시 친구가 뜬금없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평소 같으면 절대 일어나지 못할 시간이고 심지어 문자를 무음으로 설정해놓았는데도 왠지 모를 싸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눈을 떠서 보고 말았다.


  요즘 몸이 무겁고 속이 메스꺼워서 '설마 셋째를 가진 건가.' 걱정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사정상 가능성이 낮으므로 확인해보지 않았다. 아직 모유수유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아침 일찍 약국에 가 임신테스트기를 사 오고 확인한 결과 청천벽력 같은 두 줄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말했다.

  우리, 또 아이를 가진 것 같다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다.


  예전에 우리는 만약 실수로 셋째아이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남편은 중절수술을 절대 반대하는 주의였지만 이렇게 막상 임신이 현실로 닥치니 의외로 쉽게 내 의견을 존중했다.

  "결정은 아이를 낳을 사람인 네가 해야지. 어떤 결정이든 나는 너를 지지한다."


  그 말이 고맙고 미안해서 나는 소리를 내 엉엉 울었다.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우리일까.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좋은 부모들을 두고 원치 않는 우리에게 아기천사가 왔을까.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나도 과거에는 낙태수술 금지법, 즉 모자보건법상 낙태수술 금지에 찬성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뱃속의 태아라도 엄연한 생명이고 사실인지 모르지만 수술 가위가 닿을 때는 반사적으로 움츠러들며 자궁 속을 도망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절수술은 비인간적이고 소름 돋는 일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는 달라졌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보다 소중한 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다. 지금 지켜야 할 가족이 윤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치 않는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 엄마의 인권이다. 이 부분에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지만 피임이나 시술에도 간혹 임신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힘들었던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의 과정을 다시 겪고싶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다행히 같은 생각을 했다. 자녀가 많으면 다복한 것은 옛 농경사회 때 통하던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경제적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키울 수 있는 만큼 출산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는 데 서로 동의했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문자 보낸 친구에게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문자를 보낸 이유는 정말 이상한 꿈을 꿨어. 네가 어린 여자아이를 가위로 잘라 죽이는 꿈이었거든. 잔인하게 살해하는 내내 너의 표정이 정말 즐거워 보여서 섬뜩했어.'


  누가 들어도 중절수술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꿈 내용이었다.


  '향아, 진심으로 네가 아이를 꼭 낳으면 좋겠다. 내가 의견을 낼 권리는 없지만 우리 사이가 나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너를 계속 설득할 생각이야. 기분 나빠도 참아줘.'


  친구 말에 몇 시간 동안은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병원을 향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임신 사건은 해프닝이었다.

  초음파와 피검사 결과도 비임신이 나왔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세 번의 임신테스트 모두 한 줄이 나왔다. 친구가 꿈을 꾼 날 사용했던 임신테스트기가 불량이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번 일은 우리 가족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다.

  불과 며칠 동안 상상임신으로 품었던 아기지만 떠나보내겠다고 결심하던 순간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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