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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Jul 27. 2018

“아이 보려고 매일 100km를 달렸어요”

육아 부모들의 토크

  오늘은 특별한 인터뷰를 기록합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도 부담스러워.”

‘어쩌라고? 부족해서 안되고 잘나서 안되고 그 가운데면 어중간해서 안된다고 하려나?’

김지영씨는 자신이 여자후배들의 권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고민 끝에 사직서를 냈고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눈물이 났다. 첫 직장이었다. 사회는 정글이고 합리보다 불합리가 많지만 주어진 일을 해내 진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났다. - 소설 <82년생 김지영> 중



대한민국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린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여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출간 1년8개월이 지난 지금도 인터파크 기준 올해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다.

무엇이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비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육아환경의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소설 속의 지영씨 남편도, 결혼을 원하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비혼자도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편견 속 피해자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머니S>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육아로 분투하는 부모들과 ‘솔직토크’ 시간을 가졌다. 저마다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로 아이를 키우며 느낀 좌절과 행복, 이들이 바라는 제도와 사회의 변화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솔직토크 참여자>
전하나(33): 맞벌이. 소셜커머스기업 팀장. 슬하에 21개월 딸.
이나라(31): 전업주부. 남편 자영업. 슬하에 41개월·5개월 아들.
최범석(36): 맞벌이. 중소기업 과장. 슬하에 32개월·10개월 딸.
박지은(37): 싱글맘. 미국계기업 차장. 슬하에 6세 딸.


육아 위해 일 포기했다
- 본인과 가족 소개부터 들어볼게요.

범석: 저는 대한민국 30대 평범한 가장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첫아이가 생후 8개월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육아를 했고 맞벌이하는 지금도 바쁜 아내를 대신해 육아와 집안일의 대부분을 한다는 점이죠. 당시 아이를 돌봐주던 베이비시터가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새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계기였어요.


나라: 저는 26살에 결혼해 28살에 첫째아이를 낳았어요. 남들보다 결혼과 출산을 일찍 해 사회생활 경력이 3년밖에 안됐죠. 아이를 낳기 전에는 꽤 큰 의류회사를 다녔는데 육아휴직 기간이 짧아 퇴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남편은 자영업을 해서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니 수입이 더 적은 제가 그만둬야 했어요. 지금은 모든 집안일을 전담하고 주말에는 육아를 분담해요. 남편은 업무상 비즈니스미팅과 술자리가 잦아 자정 넘어 귀가하는 날이 많거든요.

하나: 저는 직장생활 9년차고요. 지금은 소셜커머스기업 위메프에서 기업브랜딩팀장을 맡고 있어요. 이전 경력은 언론사, 대기업 계열사, 스타트업 등 다양해요. 딸을 엄마에게 맡기고 매일 친정으로 출퇴근하며 주말 부부생활 중입니다.

지은: 아마 이 네명 중에는 제가 가장 최악의 상황이겠네요. 저는 싱글맘이자 워킹맘이에요. 딸이 만 두살이 되던 해 혼자서 아이를 키우게 됐죠. 가장 막막했던 건 살 집이었어요. 서울에 아이와 살 집을 얻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빌려 보육기관의 도움도 받았지만 월세 등 주거비를 감당하기가 힘들었고 최선의 선택은 경기도로 이사오는 것이었어요. 당시 심정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아픔보다 내 인생은 끝났구나,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계 문제였어요. 소득이 높아서 한부모가정 혜택도 받을 수 없었지만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주거와 보육지원은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을 위해 존재해야 해요.


보조양육비 200만원, 한달 저축 0원
- 육아로 인한 금전적 부담은 얼마큼인가요.

나라: 두 아이를 낳았는데도 주변에서는 왜 젊은 나이에 다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봐요.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회생활 기간이 짧아 3년차 연봉 3500만원을 받다가 경력이 단절됐고 지금 다시 일한다면 베이비시터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는 거죠. 저는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앓았는데 병원 한번 가보지 못했어요. 온종일 남편 귀가시간만 기다리다가 늦으면 잔소리를 반복하고 부부사이도 나빠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꿔 남편에게 월급받는 주부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마음먹어 한결 편해요.

하나: 저희 부부는 맞벌이하는데도 한달 내내 저축하는 돈이 0원이에요. 지금 사는 집의 구입자금 70%가 주택담보대출이라 원리금을 갚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대가로 드리는 돈이 한달 200만원이에요. 하지만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하던 엄마가 나를 대신해 육아를 택했고 친정이 경기도 파주인데 회사는 서울 삼성동이라 아이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내내 맡기니까요.


사진=임한별 기자


육아공백, 아이에게 미안했다
- 정부·기업의 육아제도와 관련한 의견을 말해주세요.

지은: 서울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무료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었어요. 그런데 경기도로 이사해 보니 없더라고요. 직장생활 12년차 시점에서 승진해 살아남느냐 도태되느냐 기로였는데 큰 사건이 터졌어요. 중요한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던 거예요. 저는 집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2시간짜리 영화를 틀어주고 그 시간 안에 미팅을 끝내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은 조급한데 시간을 놓쳤고 전화로 여기저기 SOS를 요청했어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혼자 잠든 아이 얼굴을 봤는데 눈물이 펑 터져 더 이상 버틸 용기가 사라졌어요. 결국은 승진을 포기하고 야근과 주말근무가 없는 작은 부서로 옮겨야 했어요.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범석: 정부가 어린이집 무상보육을 지원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요. 어린이집은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돌봄이 가능해도 실제로는 대부분의 아이가 오후 3~4시쯤 하원해요. 부모가 전업주부인 경우도 있고 베이비시터나 조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려가서죠. 친구들이 늦게까지 남아 내 아이와 함께 놀아줘야 하는데 남는 시간 동안 혼자 방치되는 것이 불안해 육아공백에 따른 보조양육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하나: 이전 회사에서 아이를 가져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3개월을 썼어요. 그런데 복직 후 인사평가 때 불이익을 받았죠. 회사는 저를 위해 많은 부분을 배려했지만 사실은 정당한 권리와 혜택을 누린 것뿐이잖아요. 법적으로 육아휴직이 보장돼도 사실상 경력단절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대다수 부모의 현실이에요. 반면 지금 회사에서는 많은 지원을 받으며 제도적 보호의 중요성을 실감했어요. 영·유아를 둔 가정은 아이 한명당 매달 보육료 15만원을 받고 육아휴직 동안 정부 지원금 외에 회사가 통상임금의 20%를 지급해요. 무엇보다 아이가 아플 때 유급 간호휴가를 쓸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저도 두번 사용한 경험이 있어요. 맞벌이부모에게 더 필요한 것은 ‘시간 복지’예요. 정부뿐 아니라 기업의 재량이 필요한 부분이지만요. 예컨대 근로기준법상 ‘육아 연차휴가’를 의무화하는 제도 등이 있으면 좋겠어요.


싱글맘·육아아빠, 소수자에 대한 편견
-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했던 경험을 말해주세요.

범석: 오늘 아이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참여수업이 있었어요. 지난해만 해도 아빠가 참여한 집은 저 하나뿐이었는데 오늘은 14명의 반 친구들 중 5명의 아이 아빠가 참여해 깜짝 놀랐어요. 사회의 인식이 빨리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아빠육아를 해본 입장에서 가장 힘든 것은 사회적인 편견이에요. ‘아빠가 왜 육아휴직을 해. 여자보다 무능력한가’라는 시선이죠. 사실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없는데 저조차 선입견을 갖다 보니 스스로 위축됐던 것 같아요. 이런 선입견을 가진 데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줬고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 육아휴게실에 ‘아빠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은 곳을 봤어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아니면 남자화장실은 기저귀교환대가 없는 곳이 더 많아요. 아기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데 이대로 집에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저분한 화장실 변기뚜껑 위에서 했던 기억이 나요.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지만 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얻는 순간의 행복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니까요.

하나: 남편은 거의 모든 가사를 도맡아해요. 아이를 위해 이유식을 만들고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맞벌이기에 당연한 일이죠. 저는 아이를 보려고 매일 100㎞를 운전하는 생활을 지난 1년3개월 동안 했어요. 실제 육아노동의 시간 총량을 따지면 제가 더 많은 부담을 졌다고 봐요.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권유하니 인사 불이익이 걱정돼 힘들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 이미 겪었잖아요. 저와 남편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경력도 연봉도 비슷한데 우리 둘 중 한사람이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제가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지은: 지금도 저는 오로지 한가지 걱정뿐이에요. 이 기사가 딸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요. 아이는 부모도 환경도 어느 것 하나 선택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많았어요. 아이가 “엄마와 아빠는 다퉜어요. 둘 다 졌어요”라고 대답하게 만드는 어른, 화가 나요. 소외된 소수자의 아픔을 더 배려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유치원 행사 때 엄마아빠 손을 잡고 오는 아이도 있지만 엄마나 아빠 한사람과 오거나 할머니 손을 붙잡고 오는 아이도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에요. 난민 수용, 다문화, 장애인 모두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 아닐까요.

하나: 어쩌다 보니 서로 힘든 경험만 얘기했지만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저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건 제 인생의 일부일 뿐이고 그 사실은 무엇과도 맞바꾸고 싶지 않아요. 아이를 낳은 삶, 낳지 않는 삶 둘 다 선택의 문제고 각자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요. 노키즈존 문제는 꼭 말하고 싶어요. 공공장소의 문제행동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라도 똑같이 제재받아야 하는데 아이를 동반한 부모의 선택권을 배제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앓는 혐오문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나라: 저는 회사일뿐 아니라 집안일도 잘하고 싶었어요. 완벽주의를 꿈꾸다 보니 해도해도 끝없는 집안일과 아이 양육에 관해선 집착하게 돼요. 그런데 아이들 아토피가 심해서 바깥외출만 하면 “피부가 왜 그러냐”는 말을 들어 상처받아요. 또 전업주부다 보니 나를 위한 소비와 지출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남편이 벌어준 돈을 쓴다고 누구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지만요. 그래도 제일 행복한 순간은 두 아이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볼 때와 남편이 “애들 때문에 힘들었지”라고 말할 때요. 그 말 한마디로 용기 내 다시 살아가요.


본 기사는 <머니S> 제550호(2018년 7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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