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기억한다. 그날은 1년여 전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율이와 가장 친한 어린이집 친구의 학부모였던 A는 그날 회사 회식 때문에 늦는 나를 대신해 우리 집 식구들에게 저녁식사를 차려줬다. 그런데 율이가 그 집에서 놀다가 친구 동생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 상처를 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총 3명의 엄마 친구들을 잃었다. 평소 잘 훈육하지 않던 내 육아 스타일 때문에 종종 불만을 표출하던 엄마들이었다. 그래도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로서 최소한의 관계만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존심도 버리고 수차례 문자와 전화를 해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인스타그램 친구 리스트에서 사라져서 가입을 탈퇴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차단당했던 것이었다.
몇 개월 후 회사에선 다른 일이 발생했다.
몇 년 전 사내 불미스러운 일로 같이 징계를 받은 후배가 있었다. 이후로 비록 데면데면 하긴 했어도 회사 일론 잘 지냈는데 어느 날 그가 업무적인 문자에도 답장을 안 하고 나를 일부러 피하는 게 느껴졌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에게 답답함과 궁금함을 참지 못해 "왜 갑자기 모른 체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내가 다른 동료들에게 자기 험담을 하고 다닌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선배가 다른 후배들에게 저는 질이 나쁜 아이니까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면서요."
나는 당황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누군가 잘못된 말을 전했거나 음해하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 내가 그 애를 마음속으로 미워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긴 시간 나와 같이 일해본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아는 선배는 그렇게 남을 험담할 사람은 아니죠. 선배가 좋은 사람인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동안 사람 일로 지쳤고 지난 사건 때문에 동료들이 뒤에서 우리 관계에 대해 나쁘게 떠드는 게 싫어요. 제 소양이 부족해서 이런 극단적인 방법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걸 이해해주세요."
살면서 나는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늘 사람들과 둥글둥글하게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누구와 크게 싸워본 적이 없고 만약 문제가 생겨도 낮은 자세로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랬던 내가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서 처음으로, 그리고 1년여 사이 한꺼번에 잇따라서 두 번의 인간관계 로그아웃을 당하고 나니 내면에 소용돌이가 치는듯했다.
아쉬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한때는 나도 인연을 놓는 것보다 붙잡는 데 더 익숙했다. 10대와 20대 때도 친한 친구와 사소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다툰 적이 있지만 화해도 잘하고 절교했던 친구와 울며불며 다시 만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서로의 실수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나를 더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시킨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렇게 놓쳐버린 관계들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반려견 루시가 죽고 루시의 집과 남은 사료, 용품 등을 동네 맘카페에 드림 처분하며 새 친구를 사귀게 됐다. 둘째 솔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가 있는 집이라 가끔 놀러 가서 밥도 먹고 함께 여행도 다녔다.
몇 주 전 새벽 이른 시간에 그 집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는 문자를 받았다. 솔이가 자기 집에 놀러 왔을 때 콧물을 흘리는 걸 보고 속으로 걱정했는데 하필 그날 우리가 돌아가고 나서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먹인 적 없는 항생제를 다른 사람의 안일한 실수로 인해 생전 처음 먹여야 하는 상황이 너무 속상하고, 나를 원망한다는 장문의 문자를 읽으며 나는 마음속에서 그를 로그아웃했다. 예의상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해서 피해를 줘 미안하다. 내 부족함 때문이고 아이가 빨리 낫길 바란다."는 짧은 답을 보냈다. 어제 다시 아이 엄마에게 안부 문자가 왔지만 나는 그녀를 차단해버렸다.
남편은 나에게 왜 어린아이 같이 행동하느냐고 했다. 사과를 받아주고 이후에 차츰 거리를 두면 되지 않느냐고.
예전의 나였으면 그랬을 것 같다. 동네 아이 엄마를 오며 가며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굳이 그렇게까지 상처를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남편 말이 맞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컨디션이 좋았던 상태에서 그 문자를 받았으면 한편으론 반가움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뿐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회사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쳤고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던 순간 문자를 받으며 든 생각은 다시 시작될 불편한 관계와 긴 사과의 문자가 짜증 나게 느껴졌다. 나를 차단했던 그들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이해와 공감이 됐다.
어렸을 적 그리던 미래의 나는 이런 모습의 어른이었던가. 이렇게 속 좁은 내가 될지 나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