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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Jan 29. 2020

공중변기 뚜껑에 눕힌 아기

라테파파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 그 말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우리 가족은 여느 가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일하는 아빠고 아내는 집에서 육아를 도맡는 ‘전업맘’이었다. 그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 건 아내의 이른 재취업이 결정되면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육아에 대한 걱정이 조금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무척 좋아했고 조카들과도 잘 놀아줬기에 육아는 자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육아는 단순히 아기와 놀아주는 일이 아니었음을, 육아아빠라는 거창한 말이 실상 ‘남자 전업주부’와 같은 말이었음을 깨달은 건 한참 뒤다.

아이가 울면 달래고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 갈아주는 건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도 없는 집안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아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퇴근한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결하는 데도 힘에 부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거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함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들이 겪는다는 산후우울증이 이런 걸까 싶었다.

첫째가 조금 자라면서는 문화센터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온종일 아빠와만 지내다 보니 아이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되어서다. 나 역시 답답함을 어딘가에 풀고 싶었다.

문화센터 수업 첫날, 할머니 손에 이끌려 온 아이는 몇 명 눈에 띄었지만 아빠와 함께 온 아이는 율이밖에 없었다. 몇몇 아이와 엄마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옆에 있는 키즈카페로 몰려가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교환했지만, 남자인 나는 어디에도 낄 수 없었다. 결국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는 날까지 율이는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한번은 마트에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육아휴게실에 ‘아빠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남자 화장실로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그나마 마트 화장실이 깨끗해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했다. 보통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기 때문에 자칫 아이를 더러운 변기 위에 눕혀놓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기도 한다. 몇 년 새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생겨나긴했지만 부족한 건 여전하다.

육아아빠가 되어보니 주변의 눈치도 많이 보였다.

‘남자가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집에서 아이나 볼까’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예민해졌다. 만만한 성격이 아닌 아내와 매일같이 싸우는 와중에도 둘째가 생겼고, 율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율이는 어린이집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엄마 혹은 아빠와 금세 웃으며 헤어졌지만 율이는 교실 앞에서 30분 넘게 우는 날이 6개월 이상 반복되었다. 율이가 겨우 어린이집에 적응할 무렵 학부모 참여수업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역시 아빠는 나 혼자였다. 육아아빠 5년차가 된 지금은 처음보다 아빠들의 참여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해 아쉽다.

<아이 가져서 죄송합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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