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 빌라 사람들-2
전에 살던 빌라에선 건축주이자 임대인이 만든 단톡방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층간 소음 민원 글이 올라오는 용도였다.
우리가 이사한 2020년 6월 이전에는 어린아이가 사는 가구가 없어서 대부분 민원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희 건물에는 나이 든 분들만 사셔서 그동안 시끄러운 적이 없었어요. 202호가 이사 온 후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어서 매일 항의를 받고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들 단단히 주의시키겠습니다.”
이런 식의 대화와 문자가 거의 매일 오가면서 감정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졌다.
그러다가 2년 후 바로 위층에 생후 한 달 된 아기를 키우는 가족이 이사 왔다. 이들 부부와는 대화가 잘 통해서 자주 교류했고 아이가 크면서 율이 솔이와 같은 어린이집에도 다니게 되어 더욱 가까워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로의 집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주말에는 공원과 박물관에도 갔다.
내 아이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위층 아이가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도 컸다.
층간 소음 공동 유발자가 되어 서로를 탓할 수도 없었겠지만 윗집 아이를 귀여워하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정말로 아이의 뛰는 소리가 듣기 싫지는 않았다.
“여보, 하온이가 벌써 깼나 봐. 뛰고 난리가 났네!”
새벽부터 아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날 수도 있었을 텐데 진심으로 하온이가 뛰는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면 화가 나지 않았다.
한 번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집주인에게 연락이 와서 “아이들 좀 못 뛰게 하세요.”라는 날 선 문자를 받았다.
“저희는 지금 밖인데요. 아직 퇴근과 하교 전입니다.”
“그런가요. 네.”
이런 상황에서 기대하는 말은 사과까진 아니라도 ‘앗, 제가 잘못 알았네요.’ 등과 같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일 텐데 기분이 괜찮을 수가 없었다.
“저희 집은 2층이고 임대인은 5층에 사시는데 어떻게 소음이 3개 층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저희 건물은 한 집에서 뛰면 전체가 쾅쾅 울리는 구조예요.“
‘건물을 그렇게 지은 게 자랑이시네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새로 이사한 집의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층간 소음 저감 설계였다.
대기업 시공사에 다니다가 퇴직하신 건축주 부부는 애정을 갖고 지은 첫 집이어서 특수공법을 사용했고 벽과 바닥의 두께를 늘리면서 층고도 높여 층간 소음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2주 동안 살아보니 정말 뛰는 소리는 물론 창문을 닫으면 소리를 질러도 작게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동주택을 이렇게 지을 수 있는데도 층간 소음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심지어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 집에는 옥상 정원이 있어서 매일 저녁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손님들을 초대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임대인 아내 분인 5층 이모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입주한 이웃의 이야기를 하셨다.
“30대 초반 신혼부부가 사는데요. 얼마나 유쾌하고 귀여운지 몰라요. 하루도 안 빼놓고 매일 손님들을 초대해서 옥상 바비큐도 하고 어제는 밤 1시까지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은 거예요.”
“어머, 스트레스 받으셨겠어요. 주의 좀 당부하시지 그랬어요?”
“전혀요! 민원이 걱정돼서 다음 날 옆 빌라 할머니에게 어제 시끄러워서 죄송했다고 말하니까 ‘조용하던 골목에 사람 소리가 나서 좋았다.’고 하시는 거 있죠.”
이렇게도 너그러운 이웃이지만 한도는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모는 물어볼 말이 있다면서 같이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했다.
4층 입주자의 행동이 얄미워서 자기도 모르게 싫은 내색을 했는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얘기였다. 남편 분과 말다툼도 했다고 했다.
옥상에는 6인 탁자와 4인 탁자가 있었는데 신혼부부는 거의 매일 손님들을 초대해 6인 탁자를 사용했다. 어느새 공용 공간이 아닌 전용 공간처럼 되어버렸다.
어느 날은 우리 가족이 먼저 옥상에 도착해 6인 탁자에 앉아있고 신혼부부가 음식을 들고 올라왔다. 자리를 양보해줬으면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음식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캠핑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자리를 양보할 수 있었고 고마움의 의미로 술과 음식을 나눠 받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에티켓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을 전용 공간처럼 사용하더라도 불편이기보다 젊고 밝은 분위기를 함께 즐기자는 생각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모는 우리보다 전부터 조금씩 쌓여온 감정들이 있어서 약간은 곤두선 상태가 됐다.
이모는 어느 날 옥상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 탁자의 위치를 움직였는데 그날도 손님을 초대한 신혼부부는 새로 바뀐 탁자의 배치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려 했다.
순간 이모의 생각에 신혼부부와 손님들은 4인이고 우리 가족과 임대인 가족은 6인이니, 그들이 작은 탁자를 사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이사 첫 주였던 그때는 매일 밤 옥상에 올라가 산책하고 두 가족이 만나 2-3시간씩 대화를 나눴다.
신혼부부는 뭔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인지 다음 날부터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잘 웃지 않고 싸늘한 분위기를 냈다. 임대인 남편 분도 아내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느냐며 나무랐다고 하셨다.
이후로는 옥상에서 소란스러운 상황이 되면 이모는 전화를 걸어 조용히 해줬으면 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옥상으로 손님들을 초대하는 것에 불편한 감정이 드는 상황마저 이르렀다.
사람 사는 소리가 층간 소음으로 바뀌는 건 결국에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상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중받는 관계에선 작은 실수나 실례도 쉽게 눈감아줄 수 있다. 부모가 괜찮은 사람이면 아이가 말썽을 부려도 그저 귀여운데, 무개념 부모의 아이가 사고를 치면 밉상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고 한 번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는 단순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건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