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패션테러리스트가 된 엄마

by 노향

결혼 전에도 화려하게 꾸미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아기를 낳은 뒤에는 패션테러리스트 수준이 되고 말았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건 기본이고 맨얼굴에 부스스한 머리카락, 옷자락 어딘가에 늘 붙어있는 밥알….


복직 초기엔 가벼운 화장도 하고 옷을 예쁘게는 아니라도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가 클수록 옷에는 항상 원인을 알 수 없는 얼룩이나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있다보니 괜히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는 기분이다.


새 옷을 사도 언제 망가질지 모르니 아예 쇼핑을 자제하게 된다. 설령 가끔 사는 옷이라도 예쁜 옷이 아니라 싸고 망가져도 아깝지 않을 옷을 고른다.


심지어 요즘은 얼룩같은 것이 보여도 무시하고 입는 일이 다반사다. 다른 옷을 찾는 일도 번거로운 데다 회사에서 잘 보일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전에는 남편 옷을 입는 여자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나도 집에서뿐 아니라 출근할 때 남편 티셔츠나 겉옷을 입는 일이 많아졌다. 결혼 전 입던 타이트한 옷에 비해 훨씬 편하니까.


한국인의 오지랖 중 하나가 인사치레로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일인데 직장 상사에게는 그런 말을 듣는다. "김노향씨 오늘 아파 보이네? 화장 좀 하고 다니지. 구두도 신고." 이런 식이다.


이런 일상 중에도 가끔은 공들여 화장하고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는 날이 있다. 결혼식이나 회사행사 등이 있는 날이다.

한껏 꾸미고 거울 앞에 서도 아가씨 때만큼 예쁘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율이엄마가 아닌 '사람 김노향'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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