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수제비 먹고 싶어."
특별한 음식도 아닌데 수제비를 해달라는 말을 엄마에게 하는 것은 꽤 어렵다. 왜냐면 엄마는 수제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수제비를 싫어하는 엄마는 배달앱에서 남들이 떡볶이나 마라탕을 검색할 때 '수제비'를 검색하는 딸을 낳았다. 수제비를 시켜 먹는 나를 목격한 엄마는 늘 한 소리를 한다.
“수제비 또 시켜 먹어?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어려운 음식도 아니구먼.”
엄마가 워낙 수제비를 싫어하니 해달라고 한 적을 손에 꼽는데 그중 한 번이 한 달쯤 전이다. 엄마랑 카톡을 하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수제비 먹고 싶다는 말을 해버렸다. 엄마는 집에 밀가루 없냐고 물었고 나는 있지만 귀찮아서 급 손주사진을 전송하며 말을 돌렸다. 내가 제대로 읽지도 않을 레시피를 밀가루반죽법부터 해서 열심히 카톡에 쓸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엄마도 이내 다른 이야기를 했고 넘어간 듯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는 우리 집 현관에 나타났다. 소분한 밀가루 반죽 몇 덩이와 페트병에 담은 멸치육수를 넣은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서.
주방에서 감자를 손질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엄마가 수제비를 싫어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가만히 곱씹어보았다. 거기에는 외할머니가 있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의 저택에 살았던 외할머니는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하던 사내와 눈이 맞았다. 종놈과 눈이 맞았다며 집안에서 핏발이 서도록 반대했다. 아이를 놓고 들어오면 외할머니만은 받아주겠다며 엄포도 아니고 회유도 아닌 것을 했고 외할머니는 그 남자와 함께 하는 단칸방 생활을 택했다. 당연히 살림은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그 남자는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손찌검을 했고 돈을 벌지 않았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줄 몰랐던 외할머니는 생계를 이어가느라 젊은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을 했다. 어린 자식들 머리 한 번 쓰다듬어줄 틈조차 없이, 그 아이들을 방안에 두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후 시장에 나가 일을 했다. 국수 한 그릇 끓여서 상에 올려둔 채로. 어느 날은 네 살 정도 된 나의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온 외할머니의 다리를 붙잡고 칭얼댔다. 국수 말고 다른 거 먹고 싶다고.
엄마의 기억에 그날 할머니는 울었다고 했다. 어린 큰 이모와 엄마가 남긴 국수 그릇을 가져다가 남은 면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훔쳤다고. 그렇게 가난한 밀가루 국수는 할머니의 아픈 손에서 눈물을 만나 수제비처럼 뭉쳐졌다. 신기했다고 했다. 엄마는 먹기 싫은 국수가 어느새 동그랗게 빚어진 게 신기했고 남은 국수로 만든 수제비가 재밌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고 했다. 새 국수를 끓일 밀가루가 없어서인지 , 국수가 싫다는 어린 자식들에게 남은 국물에라도 말아 먹일 찬밥 한 덩이가 없어서인지 할머니는 연신 서러운 눈물을 훔쳤다는 게 엄마의 기억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국수가 아닌 수제비를 차려두곤 일을 나갔다. 그렇게 또 얼마나 수제비를 먹었는지 몰라도 엄마는 이제 수제비는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먹기 싫은데 할머니가 또 울까 봐 구역질이 올라와도 참고 먹어서 아주 징그럽다며.
그렇게 싫은 수제비도 자식을 위해서는 밀가루 생내를 참아가며 반죽부터 할 수 있는 게 엄마인가. 비록 맑은 수제비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하는 게 더 맛있다며 엄마 마음대로 묵은지를 썰어 넣었지만 말이다. 원하던 감자 수제비가 아닌 김치 수제비를 한 그릇 뚝딱하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수제비를 끓이는 엄마의 마음이 외할머니의 것과는 다르면 좋겠다고. 그리고 눈물로 빚어낸 외할머니의 수제비를 이제는 지겹다고 타박하지 말라고. 이렇게 웃음과 추억 위에 동동 떠있는 수제비를 그만 타박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