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대신 선 긋는 말 한마디
나는 이상하게 감이 빠른 사람이었다.
특히 좋지 않은 예감일수록, 더 정확했다.
그날도 그랬다.
10월 중순, 남편은 예비군 훈련차 잠시 다녀갔고
며칠 뒤부터 내 몸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했고,
"한 달도 안 됐는데 어떻게 알아?"라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그 작은 변화들이 나에게는 분명했다.
소변 테스트기를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모른다.
어떤 날은 한 줄, 또 어떤 날은 흐릿한 두 줄.
확신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나는 마음이 요동쳤고,
그럴수록 더 조용히, 더 단단히 확신했다.
‘아이야, 너구나. 네가 온 게 맞는구나.’
11월 11일,
모두가 빼빼로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그날,
나는 조용히 병원 진료실 앞에 앉아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시간을 혼자 버티고 있었다.
사실… 난 임신이 아니길 바랐다.
그저 해프닝이면 좋겠다고,
조금 이르지만 착각이었기를 바랐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육체도, 정신도, 그 어떤 것도.
결국 초음파를 통해
작고, 아직 이름도 없는 생명을 확인했다.
의사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임신 맞습니다.”
남편과 함께 그 말을 들었지만,
내 안에 자리한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외로웠다.
기쁨보다는 막막함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밀려들었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이 집안은 이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보다 ‘우리’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
그게 너무 가혹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너무나 빨리, 너무도 차갑게 깨졌다.
임신 사실을 시어머니께 알렸을 때,
돌아온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나는 아이 못 봐준다.”
정적이 흘렀다.
축하도, 놀람도, 안부도 없이
그녀는 나를 단번에 선 너머로 밀어냈다.
나는 그저, 임신 사실을 알렸을 뿐이었다.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녀의 첫 반응은 그토록 단호한 ‘거절’이었을까.
그 말은 내 가슴을 내려앉게 했다.
마치 ‘너희의 일이니 알아서 해라’라는 경계의 말처럼,
나는 기쁨도 감정도 꺼낼 틈 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제 막 생명을 맞이한 여자가 되었고,
그 시작은 너무 외로웠다.
남편의 반응은 무심했고,
그의 가족은 내 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없었다.
나는 분명 두 사람의 아이를 가졌는데,
그 시작부터 혼자였다.
기쁨을 말할 자리는 없었고,
불안과 외로움만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다시 깨달았다.
이 결혼 안에서 ‘나’라는 사람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걸.,